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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태도를 보이라!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라!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라!

“나는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겠다. 나의 하느님께서 내 말을 들으실 것이다.”—미가 7:7.

1, 2. (ㄱ)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그릇된 태도가 어떻게 해로운 영향을 미쳤습니까? (ㄴ) 그리스도인이 합당한 태도를 배양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생기게 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많은 일들은 우리의 태도에 따라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 있을 때 기적에 의해 만나를 공급받았습니다. 그들은 주위의 불모지를 둘러보면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신 것에 대해 깊이 감사했어야 하였습니다. 그들에게 긍정적인 태도가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이집트의 여러 가지 식품을 생각하면서 만나는 맛이 없다고 불평하였습니다. 얼마나 부정적인 태도입니까!—민수 11:4-6.

2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역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물이 밝게 보일 수도 있고 어둡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태도가 없으면 쉽사리 기쁨을 잃게 될 수 있으며, 그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말한 것처럼 “여호와의 기쁨이 [우리]의 성채”이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8:10) 긍정적이고 기뻐하는 태도는 우리를 강하게 지켜 주는 데 도움이 되고 회중 내의 평화와 연합을 증진시켜 줍니다.—로마 15:13; 빌립보 1:25.

3. 예레미야가 나타냈던 합당한 태도는 험난한 시대에도 어떻게 그에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3 예레미야는 험난한 시대를 살면서도 긍정적인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심지어 기원전 607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끔찍스러운 광경을 목격할 때에도 그는 긍정적인 면을 볼 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잊지 않으실 것이고 그 민족은 살아남을 것이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애가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우리가 끝에 이르지 않은 것은 여호와의 사랑의 친절의 행동이다. 그분의 자비는 결코 끝에 이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침마다 새롭습니다. 당신의 충실함은 풍부합니다.” (애가 3:22, 23) 역사 전반에 걸쳐서 하느님의 종들은 극도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적극적이고 심지어 기뻐하기까지 하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고린도 둘째 7:4; 데살로니가 첫째 1:6; 야고보 1:2.

4. 예수께서는 어떤 태도를 유지하셨으며, 그것은 그분에게 어떻게 도움이 되었습니까?

4 예레미야 시대로부터 600년이 지나서, 예수의 경우에도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은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수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시고 고통의 기둥을 인내하시어 하느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 12:2) 예수께서는 어떤 반대나 박해를 직면하더라도—심지어 고통의 기둥에서 극한 고통을 겪으면서도—“자기 앞에 놓인 기쁨”에 정신을 집중하셨습니다. 그 기쁨이란 여호와의 주권을 입증하고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특권에 더하여 순종하는 인류에게 장차 큰 축복을 가져다 줄 전망이었습니다.

기다리는 태도를 가지라

5. 기다리는 태도가 문제를 보는 합당한 시각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까?

5 예수께서 가지셨던 것과 같은 정신 태도를 배양한다면, 우리가 기대하던 때에 우리가 기대하던 방식으로 언제나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호와의 기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예언자 미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나는 늘 여호와를 바라보겠다. 나는 내 구원의 하느님을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겠다.” (미가 7:7; 애가 3:21) 우리 역시 기다리는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한 태도를 보일 수 있습니까? 여러 부면에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부면으로, 우리는 권위를 가진 형제가 잘못 행동하고 있으며 즉각적인 시정이 필요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기다리는 태도가 있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로 그가 잘못한 것인가, 혹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그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그 사람이 개선될 수 있고 강력한 시정 조처가 필요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에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고 계신 것일 수 있지는 않은가?’

6. 개인적인 문제로 고투하고 있는 사람에게 기다리는 태도가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6 우리가 개인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약함으로 인해 고투하고 있을 때에도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여호와께 도움을 청하는데도 문제가 지속된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럴 때 어떻게 할 것입니까? 우리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든 그 일을 계속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에 믿음을 두어야 합니다. “계속 청하십시오. 그러면 주어질 것입니다. 계속 찾으십시오. 그러면 발견할 것입니다. 계속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열릴 것입니다.” (누가 11:9) 계속 기도하면서 여호와를 기다리십시오. 여호와께서는 적절한 때에 그분의 방식대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데살로니가 첫째 5:17.

7. 성서에 대한 이해가 점진적으로 새로워지는 것을 보는 우리의 시각과 관련하여 기다리는 태도가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7 성서 예언들이 성취되어 감에 따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 새로워지게 됩니다. 하지만 때때로 어떤 것은 명확히 밝혀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고 생각될지 모릅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에 밝혀지지 않는다 해도 우리는 기꺼이 기다립니까?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비밀”을 한 번에 조금씩 약 4000년에 걸쳐서 밝히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기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에베소 3:3-6) 그렇다면 우리가 조급하게 행동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이 여호와의 백성에게 “적절한 때에 ·⁠·⁠· 양식을” 나누어 주도록 임명받았다는 사실을 의심합니까? (마태 24:45) 모든 것이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경건한 기쁨을 상실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밀한 일”을 언제 어떻게 밝혀 주실 것인지를 결정하시는 분은 여호와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아모스 3:7.

8. 여호와의 참으심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었습니까?

8 어떤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 충실하게 봉사해 왔지만 “여호와의 크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날”을 살아서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낙심할지 모릅니다. (요엘 2:30, 31)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도 긍정적인 면을 봄으로써 격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우리 주의 참으심을 구원으로 여기라’고 조언하였습니다. (베드로 둘째 3:15) 여호와의 참으심 때문에 의로운 마음을 가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더 진리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닙니까? 그뿐만 아니라, 여호와께서 참으심을 더 오래 나타내실수록,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계속 이루어 나가”는 데 필요한 시간을 더 많이 가질 수 있습니다.—빌립보 2:12; 베드로 둘째 3:11, 12.

9.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서 제한된 몫밖에 할 수 없을 경우, 기다리는 태도는 그러한 상황을 인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9 기다리는 태도는 반대나 질병이나 노화를 비롯한 문제들로 인해 우리가 왕국 봉사에서 제약을 받을 때 낙심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영혼을 다해서 그분을 섬기기를 기대하십니다. (로마 12:1)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은 “낮은 자와 가난한 이를 아껴 보”시는 분이므로 우리가 합리적으로 바칠 수 있는 것 이상을 요구하지 않으시며, 여호와께서도 그렇게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시 72:13) 그러므로 우리는—이 사물의 제도에서든 오는 사물의 제도에서든—상황이 변화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격려받고 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불의하지 않으시므로, 여러분이 거룩한 자들을 섬겨 왔고 또 계속 섬기면서 여러분이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일과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히브리 6:10.

10. 기다리는 태도가 있으면 어떤 불경건한 특성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까? 설명하십시오.

10 기다리는 태도는 또한 주제넘음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배교자가 된 일부 사람들은 기다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성서 이해에 있어서든 조직적인 문제에 있어서든 바로잡는 일이 필요하다고 느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의 영이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인도하여, 우리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때가 아니라 그분이 정하신 때에, 바로잡는 일을 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잡는 일은 여호와의 뜻과 일치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지 우리의 개인적 생각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배교자들은 주제넘은 태도가 생각을 비뚤어지게 해서 자신들을 걸려 넘어지게 만들도록 허락합니다. 하지만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정신 태도를 받아들였다면, 기쁨을 계속 간직하고 여호와의 백성 가운데 머물러 있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빌립보 2:5-8.

11. 우리는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은 누구를 본받는 일입니까?

11 물론, 기다리는 태도를 갖는다는 것은 게으르거나 무활동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열심히 개인 성서 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영적인 것들에 대해 충실한 예언자들이나 심지어 천사들이 나타냈던 것과 같은 예리한 관심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러한 관심에 대해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 구원에 관해서는 ·⁠·⁠· 예언자들이 부지런히 탐구하고 주의 깊이 살펴보았습니다. ·⁠·⁠· 이런 일들은 천사들도 자세히 살펴보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베드로 첫째 1:10-12) 우리가 해야 할 일에는 개인 연구 외에도 정기적인 집회 참석과 기도가 있습니다. (야고보 4:8) 정기적으로 영적 양식을 섭취하고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연합하고 교제함으로써 영적 필요를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정신 태도를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마태 5:3.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라

12. (ㄱ) 아담과 하와는 어떠한 독립을 추구하였습니까? (ㄴ) 인류가 아담과 하와의 행로를 따름으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있게 되었습니까?

12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 남녀를 창조하셨을 때, 옳고 그름에 관한 표준을 정하는 권리만큼은 자신이 친히 가지고 계셨습니다. (창세 2:16, 17) 아담과 하와는 하느님의 인도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였으며, 그로 인해 세상이 오늘날 우리가 보는 것과 같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습니다.” (로마 5:12) 아담의 시대 이후로 인간 역사 6000년은 예레미야의 이러한 말이 참됨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오 여호와여, 땅의 사람의 길이 자기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제가 잘 압니다. 자기 발걸음을 인도하는 것은 걷는 사람에게 있지 않습니다.” (예레미야 10:23) 예레미야의 말이 참됨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주의적인 견해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인 견해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해서 다스렸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여 해롭게” 했던 오랜 역사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 줍니다.—전도 8:9.

13. 여호와의 증인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어떤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13 여호와의 증인은 인류가 처한 상황을 보면서, 현 사물의 제도에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합니다. 긍정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기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1950년대 초에 미국의 한 교직자는 「긍정적 사고의 힘」(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이라는 베스트셀러 서적을 펴냈습니다. 그 책에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접근하면 대부분의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긍정적 사고는 확실히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러나 경험이 알려 주는 바와 같이, 지식이나 기술이나 물질적 수단을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들 때문에 우리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규모로 볼 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은—아무리 긍정적 사고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인간이 성공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너무나 벅찬 것입니다!

14. 여호와의 증인은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설명하십시오.

14 여호와의 증인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현실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부정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비난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증인들은 인류가 처한 상황을 영구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유일한 분에 대해 사람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합니다. 이 면에서도 증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정신 태도를 본받고 있습니다. (로마 15:2) 그리고 증인들은 사람들이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누리도록 돕는 일을 바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증인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에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올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마태 28:19, 20; 디모데 첫째 4:16.

15. 여호와의 증인이 하는 일은 어떻게 사람들의 생활을 바람직하게 변화시킵니까?

15 여호와의 증인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회 문제들—특히 불결한 비성경적 행위들—을 도외시하지 않습니다. 관심 가진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려면 그 전에 먼저 변화를 해야 하는데, 흔히 하느님을 불쾌하시게 하는 중독성이 있는 악습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고린도 첫째 6:9-11) 그러므로 여호와의 증인은 자신들이 전하는 소식에 호응하는 사람들이 술취함이나 마약 중독이나 부도덕이나 강박성 도박을 극복하도록 도와줍니다. 그처럼 변화된 사람들은 책임감 있고 정직한 방법으로 가족을 부양하는 법을 배웁니다. (디모데 첫째 5:8) 개인들이나 가족들이 이러한 면에서 도움을 받게 되면, 지역 사회에서 문제들이 줄어들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마약 중독자가 줄어들고 가정 폭력 건수가 줄어드는 것과 같은 일들이 있게 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스스로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 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생활을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도록 도와줌으로써, 사회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기관들의 짐을 덜어 줍니다.

16. 여호와의 증인이 세속적인 개혁 운동에 가담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그러면 여호와의 증인이 세상의 도덕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활동적인 증인들의 수는 380만 명을 약간 밑돌던 데서 거의 600만 명으로 증가하였습니다. 그것은 220만 명 가량이 증가한 것을 의미하는데, 그들 중 다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서 불의한 행위들을 버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바람직하게 변화되었습니다! 물론, 이 수는 같은 기간에 증가한 세계 인구—8억 7500만 명—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인류 가운데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생명의 길을 택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그들이 전하는 소식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서 큰 기쁨을 발견합니다. (마태 7:13, 14) 증인들은 오직 하느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인 온 세상이 훌륭하게 변화될 때를 기다리고 있기에, 세속적인 개혁 운동에는 가담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운동은 흔히 좋은 의도로 시작하지만 결국에는 환멸과 심지어는 폭력으로 끝나고 말기 때문입니다.—베드로 둘째 3:13.

17. 예수께서는 주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슨 일을 하셨으며, 그러나 무슨 일은 하지 않으셨습니까?

17 여호와의 증인은 이러한 행로를 걸으면서, 예수께서 지상에 계실 때 나타내셨던 것과 같은 여호와에 대한 확신을 나타냅니다. 과거 1세기에 예수께서는 병고치는 기적들을 행하셨습니다. (누가 6:17-19) 그분은 심지어 죽은 사람을 부활시키기까지 하셨습니다. (누가 7:11-15; 8:49-56) 그러나 그분은 질병 문제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우리의 적인 죽음을 정복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그런 일을 하기로 정하신 때가 아직 안 되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완전한 사람으로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계셨으므로, 아마도 심각한 정치·사회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일을 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분과 동시대 사람들 중 일부는 그분이 그런 식으로 권력을 잡으시고 행동하시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람들은 그분이 행하신 표징들을 보고 ‘이분은 확실히 세상에 오게 되어 있는 예언자이시다’라고 말하기 시작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와서 자기를 붙잡아 왕으로 삼으려는 것을 아시고, 혼자 다시 산 속으로 물러가셨다.”—요한 6:14, 15.

18. (ㄱ) 예수께서는 어떻게 항상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셨습니까? (ㄴ) 1914년 이래 예수의 활동은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18 예수께서는 자신이 왕권을 행사하고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병고치는 일을 행하실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정치나 순수 사회사업에 관여하기를 거절하셨습니다. 심지어 승천하셔서 하늘에서 불멸의 영의 생명을 누리게 되신 후에도, 그분은 행동을 취하시기 전에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를 기꺼이 기다리셨습니다. (시 110:1; 사도 2:34, 35) 그렇지만 그분은 1914년에 하느님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한 이래 “이기면서 나아갔으며 또 이기는 일을 온전히 이루려고” 나아가고 계십니다. (계시 6:2; 12:10)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사람들은 왕국에 관한 성서의 가르침에 무지한 상태에 머무는 쪽을 택하는 반면에, 우리는 그분의 왕권에 복종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기다림—좌절감의 근원인가, 기쁨의 근원인가?

19. 기다림은 어떤 때 “마음을 병들게” 하고, 어떤 때 기쁨의 근원이 됩니까?

19 솔로몬은 기다림이 좌절감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기대가 늦추어지면 마음을 병들게 한다’고 썼습니다. (잠언 13:12) 확실히, 근거 없는 기대를 품고 있으면 실망으로 인해 마음이 병들게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행복한 일—이를테면, 결혼식이나 자녀 출산 또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재회하는 것과 같은 일—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일이 이루어질 날이 오기 오래 전부터 기대감으로 기쁨에 가득 차게 될 수 있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을 지혜롭게 사용해서 앞으로 있게 될 일을 준비하고 있으면 그 기쁨이 더 커지게 됩니다.

20. (ㄱ) 우리는 어떤 놀라운 일들을 보게 될 것임을 확신을 가지고 기대합니까? (ㄴ) 우리는 여호와의 목적이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는 동안 어떻게 기쁨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20 우리의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온전한 확신이 있으면—그 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른다 해도—기다리는 기간이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충실한 숭배자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과 질병이 끝나는 것을 볼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사랑하는 죽은 이들을 포함하여 수십억의 죽은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게 될 때를 간절한 기대감을 가지고 기쁘게 기다립니다. (계시 20:1-3, 6; 21:3, 4) 오늘날과 같은 생태계 위기의 시대에, 그들은 이 땅에 낙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리라는 확실한 전망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35:1, 2, 7) 그러므로 기다리는 시간을 슬기롭게 사용해서 “주의 일에서 항상 할 일을 많이 가지”는 것은 얼마나 지혜로운 일입니까! (고린도 첫째 15:58) 영적 양식을 계속 섭취하십시오. 여호와와의 관계를 더욱더 친밀하게 세워 나가십시오. 여호와를 섬기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찾는 일을 하십시오. 동료 신자들을 격려하십시오. 여호와께서 얼마나 되는 시간을 더 허락하시든 그 시간을 온전히 활용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를 기다리는 일은 결코 당신의 “마음을 병들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당신을 기쁨으로 충만하게 해 줄 것입니다!

설명할 있습니까?

● 예수께서는 어떻게 기다리는 태도를 보이셨습니까?

● 그리스도인은 어떤 상황에서 기다리는 태도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까?

● 여호와의 증인이 여호와를 기다리면서 만족해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여호와를 기다리는 것이 어떻게 기쁨의 근원이 될 수 있습니까?

[연구 질문]

[12면 삽화]

예수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을 위하여 인내하셨다

[13면 삽화]

여러 해 동안 봉사했어도 기쁨을 유지할 수 있다

[15면 삽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여호와의 증인이 되면서 생활이 바람직하게 변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