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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왔다!”

“시간이 왔다!”

“시간이 왔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옮겨 갈 시간이 왔다.’—요한 13:1.

1. 기원 33년 유월절이 다가오자 예루살렘은 무슨 추측으로 소란스러우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기원 29년에 침례받으셨을 때, 죽음과 부활과 영광스럽게 되는 “시간”으로 인도하게 될 행로에 들어서신 것이었습니다. 이제 기원 33년 봄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의 고등 법원인 산헤드린이 예수를 죽이려고 상의한 지 몇 주밖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산헤드린 성원이면서 예수와 친하게 지낸 니고데모로부터 아마 그 계획을 알게 되신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 요르단 강 건너 시골로 들어가셨습니다. 유월절 축제가 가까워지자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며, 그 도시는 온통 예수에 대한 추측으로 소란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당신들의 의견은 어떠합니까? 그가 축제에 아주 안 올까요?” 하고 묻습니다.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보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가 있는 곳을 자기들에게 보고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떠들썩한 분위기가 한층 더 고조되었던 것입니다.—요한 11:47-57.

2. 마리아의 어떤 행동이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마리아를 변호하여 대답하시는 예수의 말씀은 그분이 ‘자기의 시간’을 알고 계신지에 대하여 무엇을 알려 줍니까?

2 유월절 엿새 전인 니산월 8일에, 예수께서는 다시 예루살렘 부근에 와 계십니다. 사랑하는 벗인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의 고향인 베다니로 오시는데,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그때는 금요일 저녁이며, 예수께서는 그곳에서 안식일을 보내십니다. 다음 날 저녁 마리아가 값비싼 향유를 사용하여 예수를 섬기자 제자들은 이의를 제기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 여자를 그냥 두십시오. 그리하여 내 장삿날을 내다보고 이 관습을 지키게 하십시오.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 12:1-8; 마태 26:6-13)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옮겨 갈 시간이 왔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요한 13:1) 닷새만 있으면 그분은 “자기 영혼을 많은 사람들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실 것입니다. (마가 10:45) 따라서 긴박감이 예수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가르치시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것은 이 사물의 제도의 끝을 간절히 기다리는 우리에게 참으로 훌륭한 모범이 됩니다! 바로 다음 날 예수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고려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승리의 입성을 하시는 날

3. (ㄱ) 일요일인 니산월 9일에 예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며, 그분 주위로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무리에 대해 불평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3 일요일인 니산월 9일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하십니다. 스가랴 9:9의 성취로 예수께서 새끼 나귀를 타고 그 도시로 가까이 가시자, 그분 주위로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펼쳐 놓으며 다른 사람들은 나무에서 가지들을 잘라 길에 펼쳐 놓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왕으로서 오시는 분은 축복받으신 분!” 하고 외칩니다. 무리 속에 있는 몇몇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시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당신들에게 말하는데, 만일 이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외칠 것입니다.”—누가 19:38-40; 마태 21:6-9.

4.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자 그 도시가 소동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불과 몇 주 전에, 무리 중에 있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께서 나사로를 부활시키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제 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 기적에 대해 계속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시자 온 도시가 소동합니다. 사람들은 “이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묻습니다. 그러자 무리는 “이분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신 예언자 예수이십니다!” 하고 계속 말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일어나고 있는 일을 보고서 이렇게 한탄합니다.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마태 21:10, 11; 요한 12:17-19.

5. 예수께서 성전에 가시자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5 위대하신 선생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시면 늘 하시던 습관대로 성전에 가서 가르치십니다. 성전에서 눈먼 사람들과 저는 사람들이 예수께로 오자 그분은 그들을 고쳐 주십니다.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이것을 보고 또 성전에 있는 소년들이 “부디, 구원해 주십시오. ‘다윗의 아들’을!” 하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화를 냅니다. 그들은 “이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있소?” 하고 항의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그렇습니다. ‘당신은 어린 아기들과 젖먹이들의 입에서 찬양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하신 이 말씀을 여러분은 읽어 보지 못하였습니까?” 예수께서는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시면서, 성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죽 둘러보십니다.—마태 21:15, 16; 마가 11:11.

6. 이제 예수의 행동 방식은 이전과 어떻게 달라졌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이제 예수의 행동 방식은 6개월 전과 얼마나 다릅니까! 그때 그분은 장막 축제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드러내지 않고 은밀히” 들어가셨습니다. (요한 7:10) 그리고 생명이 위협을 받을 때는 언제나 안전하게 피하는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을 붙잡으라는 명령이 내려져 있는 도시로 공공연하게 들어가십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신을 메시아라고 광고하는 일을 습관으로 삼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42:2; 마가 1:40-44) 자신에 관한 요란한 광고나 왜곡된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 나가는 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무리가 공공연하게 예수를 왕이요 구원자—메시아—라고 선언하고 있는데도, 그분은 그들을 잠잠케 해 달라는 종교 지도자들의 요청을 거절하십니다! 그분이 이렇게 달라지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바로 다음 날 선포하시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기 때문입니다.—요한 12:23.

담대한 행동—그리고 생명을 구하는 가르침

7, 8. 기원 33년 니산월 10일에 예수께서 하신 행동은 어떻게 그분이 기원 30년 유월절에 성전에서 하신 행동을 생각나게 합니까?

7 월요일인 니산월 10일에 성전에 도착하자마자 예수께서는 전날 오후에 본 것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성전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돈 바꿔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걸상을 뒤엎으십니다. 그리고 아무도 성전을 가로질러 기구를 나르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수께서는 그릇된 일을 하는 자들을 정죄하시면서 이렇게 단언하십니다. “‘내 집은 모든 나라 사람들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런데 당신들은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소.”—마가 11:15-17.

8 예수께서 하신 행동은 3년 전인 기원 30년 유월절에 성전에 가셨을 때 하신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하시는 질책은 훨씬 더 통렬합니다. 성전의 상인들을 가리켜 이번에는 “강도들”이라고 하십니다. (누가 19:45, 46; 요한 2:13-16) 그들은 희생 제물로 바치기 위해 동물을 살 필요가 있는 사람들에게 터무니없는 값을 요구하기 때문에 강도들입니다.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백성의 중심이 되는 자들은 예수께서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소식을 듣고 또다시 그분을 죽일 방법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어떻게 제거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크게 놀란 모든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분에게 붙어다니기 때문입니다.—마가 11:18; 누가 19:47, 48.

9. 예수께서는 어떤 교훈을 베푸시며, 성전에서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초대를 하십니까?

9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계속 가르치면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시간이 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인간 생명이 며칠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예수께서는 열매를 맺기 위해서 밀알이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를—그분 자신이 죽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나누어 주는 수단이 되는 것과 상응하는 일을—설명하신 다음,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초대를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고자 하면 나를 따르십시오. 내가 있는 그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히 여기실 것입니다.”—요한 12:23-26.

10. 예수께서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10 예수께서는 나흘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죽음에 대해 생각하시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내 영혼이 괴로우니,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아버지, 이 시간을 면하도록 저를 구해 주십시오.” 그러나 예수를 기다리고 있는 일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제가 이 시간에 이르렀습니다” 하고 그분은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모든 마련과 일치하게 행동하십니다. 희생적인 죽음을 당하실 때까지 하느님의 뜻이 자신의 행동을 지배하게 하기로 결심하고 계십니다. (요한 12:27) 우리를 위하여 참으로 훌륭한 모범—하느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모범—을 세워 놓으셨습니다!

11. 하늘에서 나는 음성을 방금 들은 무리에게 예수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베푸십니까?

11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아버지의 명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깊이 염려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하늘에서 “내가 영광스럽게 하였고, 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 하고 선포하는 음성이 나자, 성전에 모여 있는 무리는 놀랍니다. 위대하신 선생님께서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무리에게 그 음성이 들린 이유와 자신의 죽음의 결과와 그들이 믿음을 나타낼 필요가 있는 이유 등을 알려 주십니다. (요한 12:28-36) 지난 이틀간은 예수의 일정이 빡빡한 날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 날도 역시 중요한 날입니다.

질책의 날

12. 화요일인 니산월 11일에 종교 지도자들은 어떻게 예수를 덫에 걸려들게 하려고 하며, 그 결과 어떻게 됩니까?

12 화요일인 니산월 11일에 예수께서는 또다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십니다. 적대적인 청중도 와 있습니다. 수제사장들과 백성의 연로자들은 전날 예수께서 하신 행동을 언급하며 그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무슨 권위로 이 일들을 하시오? 또 누가 당신에게 이 권위를 주었소?” 탁월한 선생님께서는 대답으로 그들을 어리둥절케 하시며, 자신의 반대자들이 얼마나 악한 사람들인지를 폭로하는 세 가지 생생한 예—그 중 두 가지는 포도원에 관한 예, 한 가지는 결혼 잔치에 관한 예—를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화가 난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붙잡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를 예언자라고 생각하는 무리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속임수를 써서 그분을 체포할 근거가 될 만한 말을 하게 하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하시는 대답들은 그들을 잠잠케 만듭니다.—마태 21:23-22:46.

13.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관하여 어떤 조언을 하십니까?

1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느님의 율법을 가르친다고 공언하는 자들이므로 예수께서는 이제 자신의 말을 듣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권고하십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말하는 것은 모두 행하고 지키십시오. 그러나 그들의 행위를 따라 행하지는 마십시오.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는 않습니다.” (마태 23:1-3) 참으로 강력한 공개적 질책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시는 질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날은 성전에서 가르치시는 마지막 날이므로 일련의 폭로를 담대하게 하시는데, 그 하나하나가 청천벽력과 같습니다.

14, 15.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어떠한 가차 없는 질책의 선언을 하십니까?

14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 위선자들이여, 당신들에게 화가 있소!” 예수께서는 이러한 선언을 여섯 차례나 하십니다. 그들이 위선자들인 이유는, 예수의 설명에 의하면, 사람들 앞에 하늘 왕국을 닫아 놓고 들어가려는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 위선자들은 개종자 하나를 만들려고 바다와 마른 땅을 두루 다니다가 개종자가 생기면 그를 결국 영원한 멸절을 당할 자로 만들어 버리고 맙니다. 그들은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하면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에는 대단히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입니다. 사실상, 그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그 속에는 강탈물과 무절제가 가득”한 자들입니다. 겉으로는 신앙심을 과시하지만 속에는 썩음과 부패가 숨겨져 있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들”이면서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꾸며서 자기들의 자선 행위에 주의를 이끌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마태 23:13-15, 23-31.

15 예수께서는 자신의 반대자들에게 영적 가치관이 결여되어 있음을 정죄하시면서, “눈먼 인도자들이여, 당신들에게 화가 있소”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성전의 금을 그 숭배 장소의 영적 가치보다 더 강조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눈먼 자들입니다. 계속해서 예수께서는 가장 강력한 질책의 말씀을 하십니다. “뱀들이여, 독사의 자식들이여, 당신들이 어떻게 게헨나의 심판을 피하겠소?” 하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은, 그들이 악한 행로를 추구하기 때문에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마태 23:16-22, 33) 우리 역시 왕국 소식을 선포하는 데 용기를 나타내기를 바라며, 심지어 거짓 종교를 폭로하는 일이 관련되어 있을 때에도 그렇게 하기를 바랍니다.

16. 올리브 산에 앉아 계시는 동안,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무슨 중요한 예언을 하십니까?

16 예수께서는 이제 성전을 떠나십니다. 오후의 해가 져 가는 때에 그분과 사도들은 올리브 산으로 올라갑니다. 그곳에 앉아 있는 동안, 예수께서는 성전의 멸망과 자신의 임재의 표징과 사물의 제도의 종결에 관한 예언을 하십니다. 이 예언의 말씀의 의미는 우리 시대에까지도 적용됩니다. 그 날 저녁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또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지금부터 이틀 후면 유월절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의 아들’은 넘겨져 기둥에 못박힐 것입니다.”—마태 24:1-14; 26:1, 2.

예수께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시다’

17. (ㄱ) 니산월 14일에 유월절을 기념하면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무슨 교훈을 베푸십니까? (ㄴ) 예수께서는 이스가리옷 유다를 내보내신 후에 무슨 기념식을 제정하십니까?

17 그 후 이틀간—니산월 12일과 13일에—예수께서는 성전에 공개적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일을 하지 않으십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죽이려고 하지만,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는 일이 그 무엇에 의해서도 방해받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목요일에 해가 지면서 니산월 14일—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날—이 시작됩니다. 그 날 저녁에 예수와 사도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한 집에 함께 모여 있는데, 그곳에는 그들이 유월절을 기념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함께 유월절을 즐기는 동안,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겸손에 관한 아름다운 교훈을 베푸십니다. 자기 주인을 은화 서른 닢—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단지 종의 몸값—에 배반하기로 동의한 이스가리옷 유다를 내보내신 후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의 기념식을 소개하십니다.—탈출 21:32; 마태 26:14, 15, 26-29; 요한 13:2-30.

18. 예수께서는 열한 명의 충실한 사도들에게 어떠한 가르침을 사랑스럽게 더 베푸시며, 임박한 자신의 떠나심에 대비하여 그들을 어떻게 준비시켜 주십니까?

18 기념식을 거행하고 난 뒤에 사도들은 자기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자인가에 대하여 열띤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의 가치에 대해 참을성 있게 가르치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시련 중에 그들이 자신과 함께 머물러 온 것을 높이 평가하시어, 왕국을 위하여 그들과 직접 계약을 맺으십니다. (누가 22:24-30) 예수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자신이 그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요한 13:34) 예수께서는 그 방에 좀 더 머무르시면서 임박한 자신의 떠나심에 대비하여 그들을 사랑스럽게 준비시켜 주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들의 친구임을 확인시켜 주시며, 믿음을 나타내도록 격려해 주시고, 성령의 도움이 있을 것임을 약속하십니다. (요한 14:1-17; 15:15) 그 집을 떠나기 전에 예수께서는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청원하십니다. “시간이 왔습니다.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그것은 아들이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자신의 떠나심에 대비하여 사도들을 준비시켜 주셨으며, 참으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요한 13:1; 17:1.

19.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괴로워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예수와 열한 명의 충실한 사도들이 겟세마네 동산에 도착하는 것은 자정이 훨씬 지나서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들과 그곳에 종종 가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 18:1, 2) 몇 시간만 있으면 예수께서는 경멸받아 마땅한 범죄자처럼 죽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예상되는 이 일과 그 일이 어떻게 아버지에게 치욕을 안겨 드릴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몹시 괴로워서, 기도하시는 동안 땀이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집니다. (누가 22:41-44) “시간이 왔습니다!” 예수께서 사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보십시오! 나를 배반하는 자가 다가왔습니다.” 그분이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이스가리옷 유다가 횃불과 등과 무기를 들고 온 큰 무리와 함께 다가옵니다. 그들은 예수를 체포하러 온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저항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 성경이 어떻게 성취되겠습니까?” 하고 설명하십니다.—마가 14:41-43; 마태 26:48-54.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다!

20. (ㄱ) 예수께서는 체포되신 후 어떤 잔학 행위들을 당하십니까? (ㄴ) 죽으시기 직전에 예수께서 “다 이루어졌다!” 하고 외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예수께서는 체포된 다음, 거짓 증인들에 의해 고발되고, 편견을 가진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고, 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선고를 받고, 제사장들과 폭도들의 조소를 받고, 군인들에게 조롱과 고문을 당하십니다. (마가 14:53-65; 15:1, 15; 요한 19:1-3) 금요일 정오에는 고통의 기둥에 못 박히시는데, 손과 발에 박힌 못에 의한 상처가 몸의 하중으로 인해 찢겨질 때 예수께서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십니다. (요한 19:17, 18) 오후 3시쯤 예수께서는 “다 이루어졌다!” 하고 외치십니다. 그렇습니다. 이 땅에 하러 오신 일을 모두 마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영을 하느님께 맡긴 다음, 머리를 숙이고 사망하십니다. (요한 19:28, 30; 마태 27:45, 46; 누가 23:46) 그로부터 셋째 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부활시키십니다. (마가 16:1-6) 부활 후 사십 일째 되는 날,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셔서 영광스럽게 되십니다.—요한 17:5; 사도 1:3, 9-12; 빌립보 2:8-11.

21. 우리는 어떻게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21 우리는 어떻게 ‘예수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를’ 수 있습니까? (베드로 첫째 2:21) 우리도 그분처럼, 왕국을 전파하고 제자를 삼는 일을 힘을 다하여 하고, 담대하고 용기 있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합시다. (마태 24:14; 28:19, 20; 사도 4:29-31; 빌립보 1:14)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어디쯤 와 있는지를 결코 잊어버리지 말고, 반드시 서로 사랑과 훌륭한 일을 고무하도록 합시다. (마가 13:28-33; 히브리 10:24, 25) 우리의 행로 전체가 여호와 하느님의 뜻과 또한 우리가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는 의식의 지배를 받기 바랍니다.—다니엘 12:4.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자신의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계신 것이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마지막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시는 데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 예수께서 ‘자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 예수의 생애의 최후 몇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은 그분에 대해 무엇을 알려 줍니까?

• 우리는 봉사의 직무에서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연구 질문]

[18면 삽화]

예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