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바로 가기

차례 바로 가기

여호와는 우리의 도피처이시다

여호와는 우리의 도피처이시다

여호와는 우리의 도피처이시다

‘이는 네가 “여호와는 나의 도피처이시다” 하였기 때문이다. 네게 어떠한 재난도 닥치지 않으리라.’—시 91:9, 10.

1. 여호와께서 우리의 도피처이시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는 그분의 백성을 위한 진정한 도피처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정성을 다한다면, ‘모든 면으로 압박을 받지만 움직이지 못할 정도로 속박되지 않고, 당혹하지만 빠져 나갈 길이 없지 않고, 박해를 받지만 궁지에 버려지지 않고, 쓰러뜨림을 당하지만 멸망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정상적인 것을 초월하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 둘째 4:7-9) 그렇습니다.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경건한 생활을 추구하도록 도와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편 필자의 이러한 말을 마음에 새길 수 있습니다. “이는 네가 ‘여호와는 나의 도피처이시다’ 하였고, 가장 높으신 분을 너의 처소로 삼았기 때문이다. 네게 어떠한 재난도 닥치지 않[으리라].”—시 91:9, 10.

2. 시편 91편과 그 시에서 약속하는 것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2 시편 91편은 모세가 지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시편 90편의 머리말을 보면 그 시를 지은 사람으로 모세의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시편 91편은 지은이에 대한 아무런 언급 없이 90편에 연이어 나옵니다. 아마도 시편 91편은 교창(交唱) 형식으로 불렀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먼저 한 가수가 독창으로 부르고(91:1, 2), 이어서 합창단이 화답하고 (91:3-8), 다시 독창으로 부르고(91:9ㄱ), 다시 합창단이 화답하고(91:9ㄴ-13), 그리고 마지막 부분(91:14-16)은 독창으로 부르는 것으로 마쳤을 것입니다. 아무튼, 시편 91편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의 반열로서 영적 안전을 누릴 것임을 약속하며, 그들의 헌신한 동료들도 하나의 그룹으로서 그와 비슷한 보증을 받게 해 줍니다. * 그러한 여호와의 모든 종들의 관점에서 이 시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하느님의 은밀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거한다

3. (ㄱ) “가장 높으신 분의 은밀한 장소”란 무엇입니까? (ㄴ) 우리는 “전능한 분의 그늘 아래서 묵”음으로 무엇을 경험합니까?

3 시편 필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가장 높으신 분의 은밀한 장소에 거하는 자마다 전능한 분의 그늘 아래서 묵을 곳을 얻으리니, 내가 여호와께 말하리라. ‘당신은 나의 도피처이시요 나의 성채이시요 나의 하느님이시니, 내가 신뢰하렵니다.’” (시 91:1, 2) “가장 높으신 분의 은밀한 장소”는 우리를 위한 그리고 특히 마귀의 특별한 표적인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위한 상징적인 보호의 장소입니다. (계시 12:15-17) 우리가 하느님의 영적 손님으로 그분과 함께 거하는 자들로서 누리는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마귀는 우리 모두를 파멸시키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전능한 분의 그늘 아래서 묵”음으로, 하느님의 보호의 그늘을 경험합니다. (시 15:1, 2; 121:5) 우리의 주권자인 주 여호와보다 더 안전한 도피처나 더 견고한 성채는 없습니다.—잠언 18:10.

4. “새 잡는 자”인 사탄은 무슨 수단을 사용하며, 우리는 어떻게 피합니까?

4 시편 필자는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그분[여호와]은 너를 새 잡는 자의 덫에서, 역경을 가져오는 역병에서 구출하시리라.” (시 91:3) 고대 이스라엘에서 새 잡는 사람은 흔히 올무나 덫을 사용하여 새를 잡았습니다. “새 잡는 자”인 사탄이 사용하는 올무 가운데는 그의 사악한 조직과 “간교한 행위”가 있습니다. (에베소 6:11,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사탄은 우리가 가는 길에 덫을 숨겨 놓음으로, 우리를 악으로 유인하여 영적으로 파멸시키려고 합니다. (시 142:3) 하지만 우리는 불의를 배척해 왔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은 덫에서 피하는 새와도 같’습니다. (시 124:7, 8) 여호와께서 악한 자인 “새 잡는 자”에게서 우리를 구출해 주시는 데 대해 우리는 참으로 감사합니다!—마태 6:13.

5, 6. 무슨 “역병”이 “역경”을 가져왔으며, 하지만 여호와의 백성이 그 역병에 굴복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시편 필자는 “역경을 가져오는 역병”을 언급합니다. 전염성이 강한 유행병처럼, 인류 가족과 여호와의 주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역경”을 가져오는 것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로 국가주의로 인해 각 지역에는 독립 주권 국가의 수가 배로 늘었다. ·⁠·⁠· 인류는 현재 점점 더 분열되고 있는 추세이다.”

6 여러 세기에 걸쳐, 분열을 일으키는 국제 분쟁을 부추기는 통치자들이 늘 있어 왔습니다. 그러한 통치자들은 그들 자신에게 혹은 여러 가지 형상이나 상징물에 경의를 표하도록 요구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백성이 그러한 “역병”에 굴복하도록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다니엘 3:1, 2, 20-27; 6:7-10, 16-22) 우리는 사랑이 넘치는 국제적인 형제들로서, 여호와께만 전적인 정성을 바치고, 성경적인 중립을 유지하며, “하느님은 ·⁠·⁠· 모든 나라에서 그분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편견 없는 마음으로 인정합니다. (사도 10:34, 35; 탈출 20:4-6; 요한 13:34, 35; 17:16; 베드로 첫째 5:8, 9)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서 박해의 형태로 오는 “역경”을 겪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기쁨에 충만해 있으며 “가장 높으신 분의 은밀한 장소”에서 영적으로 안전하게 거합니다.

7.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그 날개 끝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까?

7 여호와를 도피처로 삼는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로부터 위로를 얻습니다. “네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그분이 그 날개 끝으로 막아 주시리니, 너는 그 날개 아래로 도피할 것이며, 그분의 진실함이 큰 방패와 보루가 되리라.” (시 91:4) 하느님은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마치 어미 새가 새끼 위에 머물러 있으면서 새끼를 보호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사야 31:5) ‘그분은 우리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그 날개 끝으로 막아 주’십니다. “날개 끝”이란, 넓은 의미로 새의 날개를 가리킵니다. 어미 새는 날개로 새끼를 덮어서, 포식자로부터 새끼를 보호합니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하는 새끼 새처럼 우리는 여호와의 상징적인 날개 끝 아래 안전하게 거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참 그리스도인 조직 안으로 도피하였기 때문입니다.—룻 2:12; 시 5:1, 11.

8. 여호와의 “진실함”은 어떻게 큰 방패이자 보루와 같습니까?

8 우리는 하느님의 “진실함” 즉 충실함을 신뢰합니다. 그것은 고대에 사용된 큰 방패와도 같은데, 그런 방패들은 흔히 문 같은 직사각형 모양이었으며 온몸을 가리기에 충분할 만큼 컸습니다. (시 5:12) 그러한 보호에 대한 확신은 우리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 줍니다. (창세 15:1; 시 84:11) 우리의 믿음처럼 하느님의 진실함도 사탄의 불화살을 막아 주고 적의 공격을 물리쳐 주는 보호가 되는 큰 방패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 6:16) 또한 그분의 진실함은 견고한 방어용 보루와도 같으므로, 우리는 그 뒤에서 굳건하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9. 밤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하지만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시편 필자는 하느님의 보호를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밤에 어떠한 무서운 것도, 낮에 날아오는 화살도, 캄캄함 중에 다니는 역병도, 대낮에 탈취하는 멸망도.” (시 91:5, 6) 야음을 틈타 많은 악행들이 저질러지기 때문에 밤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흔히 적들은 우리의 영성을 파괴하고 우리의 전파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해, 현재 땅을 덮고 있는 영적 어둠 가운데서 은밀하게 행동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밤에 어떠한 무서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시 64:1, 2; 121:4; 이사야 60:2.

10. (ㄱ) “낮에 날아오는 화살”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 같으며, 우리는 그러한 화살에 어떻게 대응합니까? (ㄴ) “캄캄함 중에 다니는 역병”의 특징은 무엇이며, 우리가 그러한 역병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낮에 날아오는 화살”은 말로 하는 공격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시 64:3-5; 94:20) 우리가 정확한 사실을 끈기 있게 제시함에 따라, 우리가 드리는 신성한 봉사에 대한 그러한 노골적인 반대는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게다가 우리는 “캄캄함 중에 다니는 역병”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권세 안에 있는,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병든 이 세상의 흑암 가운데 번져 나가는 상징적인 역병입니다. (요한 첫째 5:19)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정신과 마음이 죽은 것과 같은 상태가 되어, 여호와와 그분의 목적과 그분의 사랑에 찬 마련과 관련하여 어둠 속에 있게 됩니다. (디모데 첫째 6:4) 이러한 어둠 가운데서도 우리는 영적 빛을 풍성하게 누리고 있으며, 따라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시 43:3.

11. “대낮에 탈취”를 당하는 자들은 어떻게 됩니까?

11 또한 “대낮에 탈취하는 멸망”도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 못합니다. “대낮”은 현 세상에서 소위 계몽이라고 일컫는 것을 가리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물질주의적인 견해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영적 파멸을 겪습니다. (디모데 첫째 6:20, 21) 우리는 담대하게 왕국 소식을 선포하면서 그 어떤 적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시 64:1; 잠언 3:25, 26.

12. 누구의 곁에서 그리고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집’니까?

12 시편 필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네 곁에서 천 명이, 네 오른편에서 만 명이 쓰러져도, 그것이 네게는 가까이 오지 못하리라. 너는 오직 너의 눈으로 바라보리니, 악한 자들의 보응을 보리라.” (시 91:7, 8) 많은 사람들은 여호와를 도피처로 삼지 않음으로 인해 바로 우리 ‘곁에서 쓰러져’ 영적으로 죽습니다. 사실, “만 명”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영적 이스라엘 사람들의 “오른편”에서 쓰러졌습니다. (갈라디아 6:16) 하지만 우리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이든지 그들의 헌신한 동료들이든지, 우리는 하느님의 “은밀한 장소”에서 안전하게 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악한 자들의 보응을 보”기만 합니다. 악한 자들은 상업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그 밖의 다른 면으로 고난을 거두어들이고 있습니다.—갈라디아 6:7.

‘어떠한 재난도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다’

13. 어떤 재난들이 우리에게 닥치지 않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현 세상의 안전은 붕괴되고 있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두며 다음과 같은 시편 필자의 말로부터 용기를 얻습니다. “이는 네가 ‘여호와는 나의 도피처이시다’ 하였고, 가장 높으신 분을 너의 처소로 삼았기 때문이다. 네게 어떠한 재난도 닥치지 않고, 너의 천막에 어떠한 재앙도 다가오지 못하리라.” (시 91:9, 10) 그렇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도피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가장 높으신 하느님을 ‘우리의 처소’로 삼고 있으며, 그 처소에서 안전을 발견합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우주 주권자로서 찬미하고, 안전의 근원이신 그분 안에 ‘거하며’, 그분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선포합니다. (마태 24:14) 그러므로 “어떠한 재난도”, 다시 말해서 이 시의 앞부분에 묘사된 재난들 중 그 어느 것도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처럼 지진이나 태풍이나 홍수나 기근이나 전쟁의 참상과 같은 재난들을 겪는다 하더라도, 그러한 재난들이 우리의 믿음이나 우리의 영적 안전을 파괴하지는 못합니다.

14. 여호와의 종으로서, 우리가 치사적인 재앙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현 사물의 제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천막에 사는 외국인 거주자들과 같습니다. (베드로 첫째 2:11) ‘그들의 천막에는 어떠한 재앙도 다가오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늘의 희망을 가지고 있든 땅의 희망을 가지고 있든, 우리는 세상의 일부가 아니며, 따라서 영적으로 치사적인 재앙들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한 재앙들 가운데는 이 세상의 부도덕, 물질주의, 거짓 종교, “야수”에 대한 숭배, 야수의 “형상”인 국제 연합에 대한 숭배와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계시 9:20, 21; 13:1-18; 요한 17:16.

15. 우리는 어떤 면으로 천사의 도움을 받고 있습니까?

15 시편 필자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보호에 관해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그분[여호와]이 자신의 천사들에게 너에 관하여 명령을 내리시어 너의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실 것이[다]. ·⁠·⁠·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옮겨 너의 발이 어떠한 돌에도 부딪히지 않게 하리라.” (시 91:11, 12) 천사들은 우리를 보호할 능력을 받았습니다. (열왕 둘째 6:17; 시 34:7-9; 104:4; 마태 26:53; 누가 1:19) 천사들은 ‘우리의 모든 길에서’ 우리를 지켜 줍니다. (마태 18:10) 우리는 왕국 선포자들로서 천사의 인도와 보호를 받고 있으며, 따라서 영적으로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계시 14:6, 7) 우리의 활동에 대한 금지령과 같은 ‘돌들’조차도 우리가 걸려 넘어져서 하느님의 은혜를 상실하게 하지 못하였습니다.

16. “젊은 사자”와 “코브라”가 가하는 공격은 어떻게 서로 다르며, 우리는 그러한 공격에 어떻게 대응합니까?

16 시편 필자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젊은 사자와 코브라를 밟을 것이요 갈기 있는 젊은 사자와 큰뱀을 짓밟으리라.” (시 91:13) 젊은 사자가 공공연하게 정면 공격을 가하는 것처럼, 우리의 적들 중 일부는 우리의 전파 활동을 중단시키려는 목적으로 만든 법을 통과시켜 공개적으로 반대합니다. 그러한 공격 외에도 우리는 코브라가 은신처에서 불시에 습격하는 것과 같은 예기치 못한 공격을 받기도 합니다. 때때로 교직자들은 입법자들이나 판사들이나 그 밖의 사람들을 이용하여 배후에서 우리를 공격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의 지원을 받는 우리는 법정에서 평화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하며, 그리하여 “좋은 소식을 변호하고 법적으로 확립”합니다.—빌립보 1:7; 시 94:14, 20-22.

17. 우리는 어떻게 “갈기 있는 젊은 사자”를 짓밟습니까?

17 시편 필자는 “갈기 있는 젊은 사자와 큰뱀”을 짓밟는 것에 대해 언급합니다. 갈기 있는 젊은 사자는 상당히 사나울 수 있으며, 큰뱀은 몸집이 매우 큰 파충류를 가리키는 표현일 수 있습니다. (이사야 31:4) 하지만 갈기 있는 젊은 사자가 얼마나 사납든지 간에 그 사자가 정면 공격을 가해 올 때 우리는 사자와 같이 사나운 사람이나 조직이 아니라 하느님께 순종함으로 상징적인 방법으로 사자를 짓밟습니다. (사도 5:29) 그러므로 위협적인 “사자”도 우리에게 영적인 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18. “큰뱀”은 누구를 연상하게 할 수 있으며, 우리는 공격을 받을 경우 어떻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18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큰뱀”을 “용”으로 번역합니다. 이 표현은 “원래의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큰 용”을 연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계시 12:7-9; 창세 3:15) 그는 먹이를 으스러뜨리고 삼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파충류와 같습니다. (예레미야 51:34) 사탄이 우리를 똘똘 감아서 이 세상의 압력으로 우리를 으스러뜨리고 삼키려고 할 때, 이 “큰뱀”의 속박을 떨쳐 버리고 나와 짓밟아 버리도록 합시다. (베드로 첫째 5:8) 기름부음받은 남은 자들은 로마 16:20의 성취에 참여하게 될 때 반드시 이 큰뱀을 짓밟는 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우리의 구원의 근원

19. 우리가 여호와에게로 도피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시편 필자는 하느님께서 참 숭배자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가 내게 애정을 품었기에, 또한 그에게 피할 길을 주겠고, 그가 내 이름을 알게 되었기에 내가 그를 보호하리라.” (시 91:14) “내가 그를 보호하리라”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내가 그를 높은 곳에 두리라”를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접근할 수 없는 곳에 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숭배자로서 그분에게로 도피하는데, 그렇게 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가 그분에게 애정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마가 12:29, 30; 요한 첫째 4:19)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적들로부터 “피할 길을 주”십니다. 우리는 결코 이 땅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구원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이름을 알고 믿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로마 10:11-13) 그리고 우리는 ‘영원히 여호와의 이름으로 걷’기로 결심하였습니다.—미가 4:5; 이사야 43:10-12.

20. 시편 91편의 종결 부분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십니까?

20 시편 91편의 종결 부분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종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가 나를 부르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고 고난 중에 그와 함께 있을 것이며, 그를 구출하여 그를 영광스럽게 하리라. 내가 긴 날들로 그를 만족시키리니, 그로 나의 구원을 보게 하리라.” (시 91:15, 16)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서 하느님의 뜻대로 그분을 부르면, 그분은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 첫째 5:13-15) 우리는 사탄이 조장해 놓은 적대감 때문에 이미 많은 고통을 겪어 왔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난 중에 그와 함께 있을 것’이라는 말씀은 우리가 앞으로 있을 시련에 대비하게 해 주며, 이 악한 제도가 멸망될 때 하느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줍니다.

21. 기름부음받은 자들은 어떻게 이미 영광스럽게 되었습니까?

21 기름부음받은 자들의 온전한 수를 채우게 될 우리 가운데 있는 남은 자들은, 사탄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긴 날들”을 보낸 후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에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놀라운 구출은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이미 영적으로 영광스럽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 마지막 날에 땅에 있는 여호와의 증인으로서 인도하는 일을 함으로 참으로 큰 영예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43:10-12) 자신의 백성에 대한 여호와의 가장 큰 구출은 그분의 큰 전쟁인 아마겟돈 때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분은 자신의 주권을 입증하시고 자신의 거룩한 이름을 거룩하게 하실 것입니다.—시 83:18; 에스겔 38:23; 계시 16:14, 16.

22. 누가 ‘여호와의 구원을 볼’ 것입니까?

22 우리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든 그들의 헌신한 동료들이든, 우리는 구원을 위해 하느님을 바라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날”에 하느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들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요엘 2:30-32) 우리 가운데 하느님의 신세계로 들어가는 생존자들의 “큰 무리”를 이루고 또한 최종 시험에서도 충실을 유지하는 사람들을, ‘하느님께서는 긴 날들로’ 즉 끝없는 생명으로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또한 수많은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계시 7:9; 20:7-15) 여호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보게 하’심으로 실로 큰 기쁨을 누리실 것입니다. (시 3:8) 그러한 웅대한 전망이 우리 앞에 있으므로, 우리의 날을 계수하는 면에서 하느님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분을 계속 바라보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도록 합시다. 우리의 말과 행실로 여호와께서 우리의 도피처이심을 계속 증명하기 바랍니다.

[각주]

^ 2항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필자들은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라는 측면에서 시편 91편을 논하지 않았다. 물론 여호와께서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도피처이시자 성채이셨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 “마지막 때”에 예수의 기름부음받은 추종자들에게 그리고 하나의 그룹으로서 그들의 헌신한 동료들에게 도피처이시자 성채이신 것과 같다.—다니엘 12:4.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가장 높으신 분의 은밀한 장소”란 무엇입니까?

●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어떤 의미에서 ‘어떠한 재난도 우리에게 닥치지 않을’ 것입니까?

● 여호와께서 우리의 구원의 근원이시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구 질문]

[17면 삽화]

여호와의 진실함이 어떻게 우리에게 큰 방패가 되는지 알고 있는가?

[18면 삽화]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종들이 예기치 못한 공격과 노골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봉사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자료 제공]

코브라: A. N. Jagannatha Rao, Trustee, Madras Snake Park Tru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