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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서 배우십시오”

“내게서 배우십시오”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마태 11:29.

1. 예수에게서 배우는 것이 즐거운 일이며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합당하게 생각하고 가르치고 행동하셨습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계셨던 기간은 짧았지만, 그분은 보람 있고 만족스러운 삶을 즐기셨으며, 늘 행복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모아서 그들에게 하느님을 숭배하고 인간을 사랑하고 세상을 이기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요한 16:33)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희망으로 가득 채워 주셨으며, “좋은 소식을 통하여 생명과 부패하지 않음에 빛을 비추셨습니다.” (디모데 둘째 1:10) 당신이 자신을 그분의 제자로 여기고 있다면, 당신은 제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와 관련하여 말씀하시는 것을 고려해 봄으로, 우리의 생활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데는 그분의 견해를 받아들이고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 관련되어 있습니다.—마태 10:24, 25; 누가 14:26, 27; 요한 8:31, 32; 13:35; 15:8.

2, 3. (ㄱ) 예수의 제자란 무엇입니까? (ㄴ) ‘나는 누구의 제자인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제자”라고 번역된 단어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어떤 것에 기울이는 사람 혹은 배우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와 관련이 있는 단어가 이 기사의 주제 성구인 마태 11:29에 나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서 배우십시오. 나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합니다. 여러분은 자기 영혼에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란 배우는 사람입니다. 복음서에서는 “제자”라는 단어를 대개 예수의 친밀한 추종자들에게 사용하는데, 그들은 그분이 전파하실 때 함께 여행하면서 그분에게서 교훈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단지 예수의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만족하였을 수 있으며, 예수의 가르침을 매우 은밀하게 받아들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누가 6:17; 요한 19:38) 복음서 필자들은 또한 침례자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에 대해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마가 2:18)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바리새인들[의] ·⁠·⁠· 가르침을 주의하라”는 경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는 누구의 제자인가?’ 하고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마태 16:12.

3 우리가 예수의 제자이고 그분에게서 배워 왔다면,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있을 때 영적으로 새 힘을 얻는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전보다 더 성품이 온화하고 마음이 겸손한 사람이 되었음을 사람들이 분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직장에서 책임자로 일하고 있거나 부모이거나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양치는 임무를 맡고 있다면, 우리의 돌봄 아래 있는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들을 대하는 방식이 예수께서 그분의 돌봄 아래 있던 사람들을 대하던 방식과 같다고 느끼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을 대하신 방법

4, 5. (ㄱ) 예수께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를 아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한 바리새인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던 중에 어떤 일을 경험하셨습니까?

4 우리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특히, 심각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점에 대해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성서에는 예수께서 사람들과 만나신 기록이 많이 들어 있으며, 그러한 사람들 가운데는 괴로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 특히 바리새인들이 그와 비슷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을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해서도 유의해 보도록 합시다.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차이점을 통해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5 기원 31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전파 여행을 하시는 중에, “바리새인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식사하자고 계속 청”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거리낌 없이 그 초대를 받아들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식탁에 기대앉으셨다. 보라! 그 도시에서 죄인으로 알려진 한 여자가 그분이 바리새인의 집에서 기대앉아 식사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향유가 담긴 설화석고 용기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그분의 뒤로 발치에 자리를 잡고 울면서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여 머리털로 닦고 있었다. 또한 그분의 발에 부드럽게 입맞추며 향유를 발랐다.”—누가 7:36-38.

6. “죄인”인 여자가 바리새인의 집에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 수 있습니까?

6 그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겠습니까?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37절)는, 궁핍한 사람들이 그러한 연회에 가서 남은 음식 얼마를 얻을 수 있게 허용한 당시의 사회적 관습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초대받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집에는, 식사가 끝나면 남은 음식을 거두어 가려고 기다리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여자의 행동은 특이하였습니다. 그 여자는 식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한쪽 곁에서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는 불미스러운 평판을 받고 있는 여자였으며 잘 알려진 “죄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이 여자의 죄가 많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음을 언급하셨습니다.—누가 7:47.

7, 8. (ㄱ) 우리가 누가 7:36-38에 기록되어 있는 것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 수 있습니까? (ㄴ) 시몬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7 당신이 그 당시에 살았고 예수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겠습니까? 그 여자가 당신에게 다가올 때 거북하게 느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한 상황에 처했다면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었을 것입니까? (누가 7:45) 몹시 당황하였을 것입니까?

8 당신이 다른 손님들 가운데 끼어 있었다면, 바리새인 시몬과 조금이나마 비슷한 생각을 하였을 것입니까? “그것을 보고, [예수를] 초대한 바리새인은 속으로 말하였다. ‘이 사람이 만일 예언자라면 자기를 만지고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어떠한 여자인지, 곧 그 여자가 죄인이라는 것을 알 터인데.’” (누가 7:39) 그와는 대조적으로, 예수는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가 처한 곤경을 이해하셨으며 그 여자가 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 여자가 어떻게 하다가 죄를 짓는 생활에 빠지게 되었는지 성서는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 여자가 실제로 매춘부였다면, 그 성읍 사람들 즉 독실한 유대인들은 그 여자를 도와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9.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으며, 그로 인해 어떤 결과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까?

9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도와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그 여자에게 “당신의 죄가 용서받았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하였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7:48-50) 그 기록은 여기서 끝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께서 그 여자를 많이 도와주지 않으셨다고 불만스럽게 느낄지 모릅니다. 요점을 말하자면, 그분은 그 여자를 축복하시고 보내셨습니다. 당신은 그 여자가 한탄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되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이어지는 누가의 기록에 유의해 보십시오. 누가는 예수께서 “도시에서 도시로, 마을에서 마을로 다니시면서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고 선포하셨다”고 말하였습니다. 또한 누가는 “여자들”이 예수와 그분의 제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자기 소유로 그들을 섬겼’다고 기술하였습니다. 회개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그 여자가 이제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 깨끗한 양심과 새로운 목적 의식과 하느님에 대한 훨씬 더 깊은 사랑을 가지고 경건한 생활 방식에 따라 살기 시작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누가 8:1-3.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차이점

10. 시몬의 집에 있었던 예수와 그 여자에 대한 기록을 고려해 보는 것이 유익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이 생생한 기록으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이 기록을 읽으면 마음이 감동되지 않습니까? 당신이 시몬의 집에 있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어떻게 느꼈을 것입니까? 당신은 예수와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까, 아니면 그분을 초대한 바리새인과 다소 비슷하게 느꼈을 것입니까?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그분이 하신 것과 똑같이 느끼고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한편, 우리는 우리 자신이 바리새인 시몬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비슷한 사람이 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11. 우리가 바리새인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을 원치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1 우리가 성서적인 증거와 세속적인 증거를 연구해 보면, 바리새인들은 공익과 민족 복지의 수호자로서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율법이 근본적으로 명확하고 이해하기 쉽다는 사실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보기에 율법이 구체적이 아니라고 생각될 경우에는 언제나 적용 방법을 규정하여 율법의 틈새를 모두 메워 버림으로, 양심이 전혀 필요 없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 종교 지도자들은 모든 문제들, 심지어 아주 사소한 문제들에 대해서까지도 행동을 지배하는 규칙을 만들어 내려고 시도하였습니다. *

12.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어떻게 여겼습니까?

12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친절하고 온화하고 공정하며 자신들의 일에 매우 적합한 사람들로 여겼다고 1세기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알려 줍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바리새인 가운데는 그러한 수준에 상당히 근접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마 당신은 니고데모가 생각날지 모릅니다. (요한 3:1, 2; 7:50, 51) 때가 되자, 바리새인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받아들인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15:5) 그리스도인 사도 바울은 바리새인들과 같은 일부 유대인들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정확한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로마 10:2) 복음서들은 일반 사람들의 눈에 비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알려 주는데, 그들은 교만하고 오만하고 독선적이고 책잡기를 좋아하고 비판적이고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이었다고 알려 줍니다.

예수의 견해

13.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3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위선적인 사람들이라고 통렬하게 비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무거운 짐들을 묶어 사람들의 어깨에 지우지만, 그들 자신은 손가락으로도 그것들을 움직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짐은 무거웠으며, 그들이 사람들에게 지운 멍에는 가혹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어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사회에서 골칫거리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이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해 왔”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으로 여기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마태 23:1-4, 16, 17, 23.

14, 15. (ㄱ) 예수께서 마태 레위를 대하신 방식을 보면 바리새인들의 행동 방식에 대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ㄴ) 우리는 이 기록으로부터 무슨 중요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14 복음서 기록을 읽게 되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대다수의 바리새인들이 가지고 있던 주요 특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세금 징수원인 마태 레위에게 제자가 되라고 초대하신 후에, 레위는 그분을 위하여 큰 환영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이에 바리새인들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분의 제자들에게 투덜거리기 시작하여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금 징수원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나는 의로운 사람들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습니다.’”—누가 5:27-32.

15 레위 자신은 예수께서 그때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도 올바로 인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가서, ‘나는 자비를 원하고 희생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배우십시오.” (마태 9:13)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히브리 예언자들의 글을 믿는다고 주장하였지만, 호세아 6:6에 나오는 그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 설사 잘못된 일이라 하더라도, 전통만은 반드시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각자는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특정한 규칙들, 이를테면 어떤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나 일반적인 상식을 반영하는 규칙들을 엄격히 고수하는 사람으로 평판이 나 있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할 때, 그들은 내가 자비롭고 친절한 사람이라는 것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가?’

16. 바리새인들의 행동 방식은 어떠하였으며, 우리는 어떻게 그들처럼 되지 않을 수 있습니까?

16 끊임없이 트집을 잡고 또 잡는 것.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행동 방식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실재하는 것이든 상상에 의한 것이든—모든 결점을 찾아내려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을 계속 방어적이 되게 하였고,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잘못을 자꾸 상기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박하와 딜과 쿠민과 같은 아주 작은 향료 식물에 대한 십일조를 바치는 것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옷차림으로 자기들의 신앙심을 과시하였으며 그 민족을 인도하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행동을 예수께서 보이신 모범과 일치시키려고 한다면, 분명히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항상 찾고 들추어내려는 경향을 피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문제를 어떻게 다루셨는가?

17-19. (ㄱ)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예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 설명하십시오. (ㄴ) 무엇 때문에 그 상황은 매우 긴장되고 불유쾌한 것이 되었습니까? (ㄷ) 그 여자가 예수께 다가갈 때 당신이 그곳에 있었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 것입니까?

17 예수께서 문제를 다루신 방식은 바리새인들의 방식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매우 심각할 수도 있었던 상황을 예수께서 어떻게 다루셨는지 살펴보도록 하십시오. 그것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한 여자와 관련된 일이었습니다. 누가 8:42-48에서 그 기록을 읽어 볼 수 있습니다.

18 마가의 기록은 그 여자가 “무서워하여 떨”고 있었다고 알려 줍니다. (마가 5:33)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의문의 여지 없이, 자기가 하느님의 율법을 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위기 15:25-28에 의하면, 비정상적인 피의 유출이 있는 여자는 그러한 유출이 지속되는 기간은 물론 유출이 그친 후 일주일 동안도 부정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 여자가 만지는 모든 물건뿐만 아니라 그 여자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까지도 부정하게 되었습니다. 그 여자는 예수께 다가가기 위해 군중을 헤치고 나가야 하였습니다. 2000년이나 지난 후인 지금 그 기록을 읽어 보아도, 불안에 떠는 그 여자가 몹시 안쓰럽게 느껴질 것입니다.

19 당신이 그날 그곳에 있었다면, 그 상황을 어떻게 보았을 것입니까? 당신은 무엇이라고 말하였을 것입니까?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친절하고 사려 깊게 사랑으로 대하셨으며, 그 여자가 일으켰을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으셨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마가 5:34.

20. 레위기 15:25-28이 오늘날 요구된다면, 우리는 어떤 난처한 문제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습니까?

20 이 일로부터 교훈을 얻을 만한 것이 있습니까? 당신이 오늘날 그리스도인 회중의 장로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또한 레위기 15:25-28이 오늘날 그리스도인에게도 요구된다고 가정하고, 한 그리스도인 여자가 그 법을 범하여 심한 혼란과 절망감에 휩싸여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엄하게 충고하면서 공개적으로 그 여자에게 창피를 줄 것입니까?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아니, 나는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예수의 모범을 따라 친절하고 생각 깊고 사려 깊게 그리고 사랑으로 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참으로 좋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다시 말해서 예수의 본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21. 율법과 관련하여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가르치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21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예수로부터 새 힘을 얻었다고 느꼈으며, 정신이 고무되고 격려를 받았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이 명확한 경우, 그것은 꼭 그대로 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율법이 개괄적인 것만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될 경우, 사람들의 양심이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정을 통해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이 살면서 숨을 돌릴 수 있을 만한 융통성이 있었습니다. (마가 2:27, 28)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셨고, 그들의 유익을 위해 끊임없이 애쓰셨으며, 그들이 실수를 할 때에도 기꺼이 자비를 나타내셨습니다. 예수께서도 그러하셨습니다.—요한 14:9.

예수의 가르침으로 인한 결과

22. 제자들은 예수에게서 배움으로 어떤 정신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까?

22 예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나의 멍에는 친절하고 나의 짐은 가볍습니다”라는 그분의 선언이 참됨을 깊이 인식하였습니다. (마태 11:30) 그들은 짐스럽다거나 가혹하다고 느끼지 않았으며, 마치 설교를 듣듯 훈계를 받는다고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하였으며,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그리고 그들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마태 7:1-5; 누가 9:49, 50) 그들은 영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다른 사람들에게 새 힘을 주고 정신과 마음이 겸손함을 나타낼 것이 요구된다는 것을 그분으로부터 배우게 되었습니다.—고린도 첫째 16:17, 18; 빌립보 2:3.

23. 예수와 함께 있었던 덕분에 제자들은 무슨 중요한 교훈을 배웠으며, 무슨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까?

23 더욱이, 많은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계속 연합해 있고 그분이 나타내신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함을 마음속 깊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내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여러분이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마치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 15:9, 10) 그들이 하느님의 봉사자이자 종으로서 성공하려면, 그들은 하느님의 놀라운 좋은 소식을 공개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일에서는 물론 가족과 벗들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예수로부터 배운 것을 부지런히 적용해야 하였습니다. 형제들의 수가 증가하여 회중들이 구성됨에 따라, 그들은 그분의 길이 올바른 길임을 거듭거듭 상기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가르쳐 주신 것은 진리였으며, 그들이 자세히 관찰한 그분의 생활—그분이 몸소 실천하신 생활—은 참으로 본받고 싶은 생활이었습니다.—요한 14:6; 에베소 4:20, 21.

24. 우리가 예수의 모범을 보고 마음에 새겨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24 이제 우리가 토의한 내용 중 얼마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떤 면에서 발전해야 하는지 알겠습니까? 당신은 예수께서 항상 합당하게 생각하고 가르치고 행동하셨다는 데 동의합니까? 그렇다면 힘을 내도록 하십시오. 그분은 우리에게 이러한 격려적인 말씀을 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이런 일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행복합니다.”—요한 13:17.

[각주]

^ 11항 “[예수와 바리새인들의] 본질적인 차이점은 하느님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되는 이해만 보더라도 명확해진다. 바리새인들의 경우, 하느님은 주로 요구하는 분이다. 예수의 경우, 하느님은 은혜로우시고 동정심이 많은 분이다. 물론 바리새인들이 하느님의 선하심이나 사랑을 부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에게는 하느님의 선하심이나 사랑이 토라[율법]라는 선물을 통해 그리고 토라에서 요구하는 것을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표현되었다. ·⁠·⁠·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해석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구전 전통의 규칙들을 포함해서 구전 전통에 고착하는 것이 토라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였다. ·⁠·⁠· 예수께서는 사랑에 대한 두 가지 명령(마태 22:34-40)을 율법 해석의 표준이 될 만한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구전 전통의 구속적인 특성을 배척하심으로 ·⁠·⁠· 바리새인들의 윤리 규정 방식과 충돌하시게 되었다.”—「신약 신학 신 국제 사전」(The New International Dictionary of New Testament Theology).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당신에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 예수께서 가르치신 방법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 바리새인들과 예수는 서로 어떻게 달랐습니까?

[연구 질문]

[18, 19면 삽화]

사람들에 대한 예수의 태도는 바리새인들의 태도와는 참으로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