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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분에 대하여 호의적인 증언을 하면서,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사람을 끄는 말씀에 경탄하기 시작하였다.”—누가 4:22.

1, 2. (ㄱ) 예수를 붙잡아 오도록 파견된 관리들이 빈손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무엇을 볼 때 예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이 그 관리들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까?

관리들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아 오도록 파견되었으나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수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해명을 요구하였습니다. “어찌하여 그를 데려오지 않았소?” 아무런 물리적 저항도 하지 않을 사람을 관리들이 붙잡아 오지 못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습니까? 관리들이 설명하였습니다. “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에 너무나 감동을 받은 나머지, 그 평화로운 분을 도저히 체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한 7:32, 45, 46.

2 예수의 가르침에 감명을 받은 사람들은 비단 그 관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성서는 허다한 사람들이 단지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듣기 위해 모여들었다고 알려 줍니다. 그분의 고향 사람들도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사람을 끄는 말씀에” 경탄하였습니다. (누가 4:22) 그분이 배에 타신 채로 갈릴리 바닷가에 모여 있는 큰 무리에게 말씀하신 적도 최소한 두 번 있었습니다. (마가 3:9; 4:1; 누가 5:1-3) 한번은 “큰 무리”가 먹을 것도 없이 며칠 동안 그분과 함께 지내기도 하였습니다.—마가 8:1, 2.

3. 예수께서 그처럼 탁월한 선생님이셨던 주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예수께서 그처럼 탁월한 선생님이 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주된 이유는 사랑이었습니다. * 예수께서는 자신이 전한 진리를 사랑하셨고 또한 자신이 가르친 사람들을 사랑하셨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께서는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비범한 이해력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번 호에 실린 연구 기사들에서는, 그분이 사용하신 효과적인 방법 가운데 얼마를 검토하고 우리가 어떻게 그러한 방법들을 본받을 수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간단명료함

4, 5. (ㄱ) 예수께서 가르칠 때 평이한 표현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이며, 그분이 그렇게 하셨다는 사실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한 점은 무엇입니까? (ㄴ) 산상 수훈은 어떻게 예수께서 간단명료하게 가르치셨음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예가 됩니까?

4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이 듣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들이 우리가 가진 지식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다른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신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분이 사용하실 수 있었던 어휘가 얼마나 무궁무진했겠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지만 그분은, 방대한 지식을 소유하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을 고려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들”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도 4:13) 그분은 그러한 사람들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이해하기 쉬운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그 말씀이 간단하고 쉬웠을지는 모르지만, 거기에는 깊은 진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5 예를 들어, 마태 5:3–7:27에 나오는 산상 수훈을 고려해 봅시다. 예수께서 그 교훈을 베푸시는 데는 불과 2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 가르침은 깊이가 있었으며, 간음, 이혼, 물질주의와 같은 문제들의 핵심을 파고드는 것이었습니다. (마태 5:27-32; 6:19-34) 하지만 복잡하거나 너무 거창하게 들리는 표현은 나오지 않습니다. 사실, 거기 나오는 말 가운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말은 어린아이에게도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해할 만하게도, 그분이 교훈을 마치시자—필시 농부들과 목자들과 어부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을—그 무리는 “그분의 가르치는 방법에 크게 놀랐”습니다!—마태 7:28.

6. 예수께서 어떻게 간단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말씀을 하셨는지를 보여 주는 예를 들어 보십시오.

6 예수께서는 흔히 명료하고 짧은 문장을 사용하여, 간단하면서도 의미가 깊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런 식으로 예수께서는 인쇄된 책을 이용할 수 없던 그 시절에, 자신이 전하는 소식을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지워지지 않게 새겨 주셨습니다. 다음의 몇 가지 예에 유의해 보십시오. “아무도 두 주인을 위하여 종노릇할 수 없습니다. ··· 여러분은 하느님과 ‘재물’을 위하여 함께 종노릇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판단을 받지 않으려면 더는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아볼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지만,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합니다.” “칼을 잡는 사람은 모두 칼로 망할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리십시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 (마태 6:24; 7:1, 20; 9:12; 26:52; 마가 12:17; 사도 20:35) 예수께서 말씀하신 지 거의 20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강력한 말씀들은 쉽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질문을 사용함

7. 예수께서 질문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7 예수께서는 질문을 매우 잘 사용하셨습니다. 상대방에게 요점을 곧바로 말해 주기만 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경우에도 질문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분이 질문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때때로 그분은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사용하여 반대자들의 동기를 드러내셨으며, 그리하여 그들을 잠잠하게 만드셨습니다. (마태 12:24-30; 21:23-27; 22:41-46) 하지만 진리를 전하거나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마음속에 있는 것을 표현하게 하거나 제자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사고력을 훈련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시간을 내어 질문을 하신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예로서, 사도 베드로가 관련된 두 가지 경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8, 9.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성전세를 내는 문제와 관련하여 올바른 결론을 내리도록 도와주기 위해 어떻게 질문을 사용하셨습니까?

8 먼저, 세를 징수하는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예수께서 성전세를 내시느냐고 물었던 때를 생각해 봅시다. *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일이 종종 있었던 베드로는 “내십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추리하도록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시몬, 당신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땅의 왕들이 누구에게서 관세나 인두세를 받습니까? 자기 아들들에게서입니까, 아니면 남들에게서입니까?’ 그가 ‘남들에게서입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그렇다면, 아들들은 세금이 면제됩니다.’” (마태 17:24-27) 베드로는 예수께서 하신 질문의 요지를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9 예수 당시, 군주의 가족은 세금을 면제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따라서 성전에서 숭배를 받으시는 하늘의 왕의 독생자인 예수께서는 세금을 낼 의무가 없으셨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단지 올바른 대답을 말해 주신 것이 아니라 베드로가 스스로 올바른 결론을 내리도록 도와주기 위해 효과적이면서도 부드럽게 질문을 사용하셨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리고 아마도 그분이 질문을 사용하신 데는, 베드로가 말하기 전에 좀 더 주의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시기 위한 목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10, 11. 기원 33년 유월절 밤에 베드로가 한 남자의 귀를 잘랐을 때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으며, 이 일은 예수께서 질문의 가치를 인식하고 계셨음을 어떻게 보여 줍니까?

10 두 번째 예는 기원 33년 유월절 밤에 예수를 체포하려고 폭도가 몰려왔을 때 있었던 일과 관련이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 그들이 그분을 보호하기 위해 싸워야 할 것인지를 물었습니다. (누가 22:49) 하지만 베드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칼을 빼서 한 남자의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어쩌면 베드로는 더 심한 부상을 입히려는 의도로 그렇게 하였던 것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베드로는 자신의 주인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었는데, 당시 예수께서는 자신을 내어 줄 준비가 온전히 되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베드로의 행동에 대해 예수께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그분은 계속 참을성을 나타내시면서, 베드로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질문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반드시 마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내가 내 아버지께 간청하여 이제라도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보내 주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생각합니까? 그렇게 한다면,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한 성경이 어떻게 성취되겠습니까?”—요한 18:11; 마태 26:52-54.

11 잠시 이 기록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성난 폭도에게 둘러싸여 계신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깨끗하게 하고 인류 가족을 구원하는 일이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바로 그 순간 그 자리에서 시간을 내어 질문을 하심으로 베드로의 정신에 중요한 진리를 인상 깊게 새겨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질문의 가치를 인식하고 계셨음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생생한 과장법

12, 13. (ㄱ) 과장법이란 무엇입니까? (ㄴ) 예수께서는 우리 형제의 사소한 결점을 비판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임을 강조하기 위해 어떻게 과장법을 사용하셨습니까?

12 예수께서 봉사의 직무에서 자주 사용하신 또 하나의 효과적인 가르치는 방법은 과장법입니다. 이것은 강조를 위해서 의도적으로 과장하는 표현 방법입니다. 예수께서는 과장법을 사용하여, 잊혀지지 않는 영상이 머릿속에 남게 해 주셨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13 예수께서는 산상 수훈에서, 다른 사람들을 ‘더는 판단하지 말’아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당신은 형제의 눈 속에 있는 지푸라기는 보면서, 당신 자신의 눈 속에 있는 서까래는 생각하지 않습니까?” (마태 7:1-3) 이 장면을 머릿속으로 그려 볼 수 있습니까? 비판적인 경향이 있는 어떤 사람이 자기 형제의 “눈”에 있는 작은 지푸라기 하나를 빼내 주겠다고 말합니다. 비판을 잘하는 그 사람은 자기 형제가 사물을 명확하게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사람 자신의 판단력은 “서까래”에 의해 손상된 상태인데, 서까래란 지붕을 받치는 데 사용되는 나무나 통나무를 말합니다. 우리 자신이 매우 큰 결점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면서, 우리 형제의 사소한 결점을 비판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그 점을 강조하는 참으로 잊을 수 없는 가르침입니다!

14. 각다귀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 것에 관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매우 강력한 과장법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또 언젠가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각다귀는 걸러 내면서 낙타는 삼키고 있는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질책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태 23:24) 이 역시 매우 강력한 과장법을 사용하신 경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알고 있던 가장 큰 동물 중 하나인 낙타와 조그마한 각다귀는 참으로 현격한 대조를 이룹니다. 보통 크기의 낙타 한 마리의 무게에 맞먹으려면 어림잡아 7000만 마리의 각다귀가 필요할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포도주를 천으로 된 체로 걸러 낸다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규칙을 철저히 지킬 것을 고집하는 그들은 각다귀를 삼킴으로 의식상 부정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상징적으로 말해서 낙타를 삼켰는데, 낙타 역시 부정한 동물이었습니다. (레위 11:4, 21-24) 예수께서 말씀하신 요점은 명백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매우 작은 요구 사항들까지 지나치게 세밀하게 지키려고 하였지만, 더 중한 것—“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하였습니다. (마태 23:23) 예수께서는 그들이 실제로 어떤 사람들인지를 참으로 명확하게 폭로하셨던 것입니다!

15. 예수께서 과장법을 사용하여 가르치신 교훈 가운데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15 예수께서는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내내 과장법을 자주 사용하셨습니다. 몇 가지 예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산을 옮길 수 있는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적은 믿음만 있어도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으로, 예수께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기는 힘드셨을 것입니다. (마태 17:20) 바늘귀로 빠져 나가려고 하는 커다란 낙타—물질주의적인 생활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하느님을 섬기려고 하는 부유한 사람이 직면하게 되는 어려움을 참으로 잘 예시해 주는 표현입니다! (마태 19:24) 예수께서 사용하신 생생한 수사적 표현과, 최소한의 말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그분의 능력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지 않습니까?

반박의 여지가 없는 논리

16. 예수께서는 항상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예리한 지적 능력을 사용하셨습니까?

16 완전한 정신을 소유하신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추리하도록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도 매우 능숙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러한 능력을 결코 오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가르칠 때, 진리를 장려하기 위해 자신의 예리한 지적 능력을 항상 사용하셨습니다. 때로는 종교적 반대자들의 거짓 비난을 논박하기 위해 강력한 논리를 사용하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치기 위해서 논리적인 논증을 사용하신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논리를 능숙하게 사용하신 예수의 능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합시다.

17, 18.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거짓 비난을 논박하시기 위해 어떤 강력한 논리를 사용하셨습니까?

17 예수께서 눈멀고 말 못하는 악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을 때를 고려해 봅시다. 바리새인들은 그 일에 대해 듣자, “이자가 악귀들의 통치자인 베엘세붑[사탄]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악귀들을 쫓아내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탄의 악귀들을 쫓아내려면 초인간적인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바리새인들도 인정했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려고 그분의 능력이 사탄으로 인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논리적인 결론을 내리기 위해 자기들의 논증을 철저히 숙고해 보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스스로 분열하는 왕국마다 황폐되며, 스스로 분열하는 도시나 집마다 지탱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만일 사탄사탄을 쫓아내면, 스스로 분열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왕국이 어떻게 지탱하겠습니까?” (마태 12:22-26) 사실상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들의 말대로 내가 사탄의 앞잡이로서 사탄이 한 일을 무위로 돌려 놓고 있다면, 사탄은 자기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되니까 머지않아 망하고 말겠군요.” 참으로 강력한 논리가 아닙니까?

18 이어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추리하도록 이 문제에 관해 좀 더 논하셨습니다. 그분은 바리새인들 가운데 일부 사람들도 악귀들을 쫓아낸 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간단하면서도 도저히 논박할 수 없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만일 내가 베엘세붑의 힘을 빌려 악귀들을 쫓아낸다면, 당신들의 아들들[즉 제자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그들을 쫓아냅니까?” (마태 12:27) 예수께서 하신 주장은 어떤 의미에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내가 사탄의 힘으로 악귀들을 쫓아낸다면, 당신들의 제자들도 그와 동일한 힘으로 행하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겠군요.” 바리새인들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기들의 제자들이 사탄의 힘으로 행하고 있다고 그들이 인정할 리는 만무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반박의 여지가 없는 논리로 자신에 대한 그들의 비난이 터무니없는 것임을 증명하셨습니다.

19, 20. (ㄱ) 예수께서는 어떤 적극적인 방법으로 논리를 사용하셨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답하시면서, 어떻게 “‘얼마나 더’ 논증”을 사용하셨습니까?

19 예수께서는 반대자들을 잠잠하게 만들기 위해 논리를 사용하셨을 뿐만 아니라, 여호와에 관한 고무적이고 가슴 뭉클하게 하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도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증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여러 차례, 이를테면 “‘얼마나 더’ 논증”이라고 할 수 있는 논리를 사용하여,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어떤 사실로부터 더 강한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두 가지 예만 살펴보도록 합시다.

20 예수께서는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대답하시면서, 마음 내켜 하지 않는 친구를 “대담한 끈덕짐”으로 설득하여 마침내 자기의 요구를 들어주도록 만든 한 남자에 관한 예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는 자기 자녀에게 기꺼이 ‘좋은 선물을 주려고’ 하는 부모의 태도에 대해서도 묘사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그분은 이렇게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여러분이 악할지라도 자기 자녀에게 좋은 선물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야 청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이 성령을 주시겠습니까!” (누가 11:1-13) 예수께서 강조하신 요점은 유사점이 아니라 대조점에 근거한 것입니다. 마음 내켜 하지 않는 친구가 설득당하여 마침내 자기 이웃에게 필요한 것을 주었다면, 그리고 불완전한 인간 부모가 자기 자녀들의 필요를 돌본다면, 사랑이 많으신 하늘의 우리 아버지께서는 겸손하게 기도로 자신에게 나아오는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얼마나 더 많이 성령을 주시겠습니까!

21, 22. (ㄱ) 예수께서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염려에 대처하는 법과 관련하여 교훈을 베푸시면서, 어떤 논증을 사용하셨습니까? (ㄴ) 예수께서 사용하신 가르치는 방법 몇 가지를 검토해 보고 나니, 어떤 결론에 이르게 됩니까?

21 예수께서는 물질적인 것들에 대한 염려에 대처하는 법과 관련하여 교훈을 베푸실 때에도 그와 비슷한 논증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의하여 보십시오. 까마귀는 씨를 뿌리거나 거두지도 않으며 헛간이나 창고도 없지만, 하느님께서 먹이십니다. 여러분은 새보다 얼마나 가치 있습니까? 백합이 어떻게 자라는지 주의하여 보십시오. 수고하거나 실을 잣지도 않습니다. ···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여, 오늘 있다가 내일 화덕에 던져지는 들의 초목도 하느님께서 이와 같이 입히신다면, 하물며 여러분이야 얼마나 잘 입히시겠습니까!” (누가 12:24, 27, 28)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새와 꽃을 돌보신다면, 자신의 종들이야 얼마나 더 잘 돌보시겠습니까! 이러한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논증은 의문의 여지 없이 예수의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을 것입니다.

22 예수께서 사용하신 가르치는 방법 몇 가지를 검토해 보고 나니, 그분을 붙잡아 오지 못한 그 관리들이 “이제까지 이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없었습니다”라고 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고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사용하신 가르치는 방법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아마도 예 즉 비유의 사용일 것입니다. 그분이 이 방법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무엇 때문에 그분이 사용하신 예가 그토록 효과적이었습니까? 이어지는 기사에서는 이러한 질문들을 살펴볼 것입니다.

[각주]

^ 1항 그 관리들은 필시 산헤드린에 속한 관리들로서, 수제사장들의 권위 아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 6항 마지막으로 열거한 사도행전 20:35의 말씀의 경우, 그러한 취지의 말씀이 복음서에 나오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인용한 사람은 사도 바울뿐이다. 바울은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제자나 부활되신 예수로부터) 직접 들었거나 아니면 하느님의 계시를 통해 받았을 것이다.—사도 22:6-15; 고린도 첫째 15:6, 8.

^ 8항 유대인들에게는 매년 성전세로 두 드라크마(약 이틀치 품삯)를 낼 것이 요구되었다. 이 세금은 성전의 보수·유지와 그곳에서 수행되는 봉사와 그 민족을 위해 매일 바치는 희생에 드는 비용을 충당하는 데 사용되었다.

기억하십니까?

● 예수께서 간단명료하게 가르치셨음을 보여 주는 어떤 예들이 있습니까?

● 예수께서 가르칠 때 질문을 사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 과장법이란 무엇이며, 예수께서는 어떻게 이 가르치는 방법을 사용하셨습니까?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호와에 관한 가슴 뭉클하게 하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어떻게 논리적인 논증을 사용하셨습니까?

[연구 질문]

[9면 삽화]

예수께서는 보통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평이한 표현을 사용하셨다

[10면 삽화]

바리새인들은 ‘각다귀는 걸러 내면서 낙타는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