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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누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오늘날 누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오늘날 누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당신은 영광과 영예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계시 4:11.

1, 2. (ㄱ) 생체 모방 공학이라는 분야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는 어떤 실례들이 있습니까? (ㄴ) 무슨 질문이 생기며, 그 대답은 무엇입니까?

천 구백사십 년대의 어느 날, 스위스의 공학자인 조르지 드 메스트랄은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자기 옷과 개의 털에 풀씨가 잔뜩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을 갖고 그 풀씨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다가, 미세한 갈고리들이 고리처럼 생긴 것들에 걸려 있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그것과 유사한 합성물인 벨크로를 발명했습니다. 자연계에 있는 것을 모방한 사람은 드 메스트랄만이 아닙니다.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날고 있는 큰 새들을 연구한 후에 비행기를 설계했습니다. 프랑스의 공학자 알렉상드르 구스타브 에펠은 사람의 대퇴골이 체중을 지탱하는 기본 원리를 이용하여 파리의 에펠 탑을 설계했습니다.

2 이러한 실례들은 생체 모방 공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것은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설계를 모방하려고 하는 과학 분야입니다. * 그런데 당연히 생기는 질문이 있습니다. 작은 풀씨, 커다란 새, 사람의 대퇴골, 그리고 인간이 만든 많은 발명품의 모본이 된 다른 모든 걸작을 설계하신 분에게 발명가들은 얼마나 자주 영예를 돌립니까? 오늘날 세상에서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예나 영광을 좀처럼 돌리지 않는 것은 서글픈 현실입니다.

3, 4. “영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이며, 그 단어는 여호와와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에 무엇을 가리킵니까?

3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필요가 있는가? 하느님은 이미 영광스러운 분이 아닌가?’ 사실 여호와는 우주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그분을 영광스러운 분으로 여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서에서 “영광”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무거움”입니다. 그 단어는 어떤 사람을 다른 사람들의 눈에 무게 있거나 중요하게 보이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느님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에는 하느님을 사람에게 인상적인 분이 되게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4 오늘날 하느님을 인상적인 분이 되게 하는 것에 유의하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시 10:4; 14:1) 사실 사회의 저명인사들은 혹시 하느님을 믿는다 해도 흔히 사람들에게 우주의 영광스러운 창조주를 불경스럽게 대하도록 영향을 미쳐 왔습니다. 어떤 면으로 그렇게 하였습니까?

‘그들은 변명할 없다’

5. 많은 과학자들은 창조의 경이에 대해 어떻게 둘러댑니까?

5 많은 과학자들은 하느님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인간을 비롯하여 창조의 경이를 어떻게 설명합니까? 그들은 그러한 경이를 진화에 의한 것으로, 다시 말해 우연에 기초한 맹목적인 힘에 의한 것으로 돌립니다. 예를 들어, 진화론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특이한 한 어류군(群)의 독특한 지느러미 구조가 육지 동물의 다리로 변할 수 있었기 때문에, ···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좀 더 고상한’ 답을 갈망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답은 결코 없다.” 그와 비슷하게, 리처드 E. 리키와 로저 루언도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인류라는 종은 ··· 어쩌면 심각한 생물학적 실패작일지도 모른다.” 자연계의 아름다움과 설계에 대해 칭송하는 일부 과학자들조차도 하느님께 영예를 돌리지 않습니다.

6. 많은 사람들은 무엇에 영향을 받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예를 돌리지 못하게 됩니까?

6 학식 있는 사람들은 진화가 사실이라고 주장할 때 무식한 사람들만이 진화를 믿지 않으려 한다는 암시를 줍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주장에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여러 해 전에, 진화론에 대해 정통한 한 사람이 진화론을 받아들인 사람들과 회견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 대부분이 지성인들은 누구나 진화론을 믿는다고 하니까 덩달아 믿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렇습니다. 교육받은 사람들이 무신론적 견해를 표명할 때, 다른 사람들은 그에 영향을 받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마땅히 돌려야 할 영예를 돌리지 못하게 됩니다.—잠언 14:15, 18.

7. 로마 1:20에 따르면, 보이는 창조물을 통해 무엇이 명확히 보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7 과학자들이 그러한 결론을 내리게 된 이유는 사실과 증거가 그러한 결론을 지지하기 때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창조주가 계시다는 증거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분에 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세상[인간]의 창조 이래, 그분의 보이지 않는 특성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들어진 것들을 통하여 지각되고 명확히 보이므로 그들[믿지 않는 사람들]은 변명할 수 없습니다.” (로마 1:20) 창조주께서는 자신의 작품에 자신의 자취를 남기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말은, 인간이 존재하기 시작한 때부터 사람들이 보이는 창조물을 통해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지각”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8. (ㄱ) 물질적인 하늘은 어떻게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를 증언합니까? (ㄴ) 우주에 제일 원인이 있었음을 보여 주는 어떤 지적이 있습니까?

8 우리는 별이 총총한 밤하늘에서 하느님에 대한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선포”한다고 시편 19:1은 말합니다. “하늘”, 즉 해와 달과 별들은 하느님의 능력과 지혜를 증언합니다. 별들의 엄청난 수효만으로도 우리는 외경심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이 모든 천체는 우주 공간을 목표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물리 법칙에 따라 운행합니다. * (이사야 40:26) 그러한 질서를 맹목적인 우연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입니까? 의미심장하게도 많은 과학자들은 우주가 갑자기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한 교수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우주가 영원토록 존재해 왔다고 해야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의 [견해]에 훨씬 더 잘 부합된다.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우주에 시작이 있다면 제일 원인도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원인이 없이 그러한 결과가 나왔다고 누가 상상할 수 있겠는가?”

9. 여호와의 지혜가 동물계에 어떻게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까?

9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증거가 땅에도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필자는 감탄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습니까, 오 여호와여!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지혜로 만드셨고, 당신의 산물이 땅에 가득합니다.” (시 104:24) 동물을 비롯하여 여호와의 “산물”은 그분의 지혜를 나타냅니다. 우리가 서두에서 살펴보았듯이, 생물의 설계는 과학자들이 종종 모방하려고 할 정도로 놀랍습니다. 몇 가지 예를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구가들은 더 강한 헬멧을 만들려는 목표로 사슴뿔을 연구하고 있고, 보청기의 성능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예민한 청력을 가진 파리를 관찰하고 있으며, 스텔스 비행기의 성능을 높이려는 생각으로 올빼미의 날개깃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자연계에서 볼 수 있는 완전한 설계를 아무리 모방하려고 해도 그것을 정말로 똑같이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생체 모방—자연계에서 영감을 얻는 기술 혁신」(Biomimicry—Innovation Inspired by Nature)이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언급합니다. “생물들은 화석 연료를 마구 소비하거나 지구를 오염시키거나 자기들의 미래를 위태롭게 하지 않고도 우리가 하고 싶어 하는 모든 것을 하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지혜입니다!

10. 위대한 설계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왜 이치에 맞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0 위에 있는 하늘을 보든, 바로 이 땅에 있는 창조물을 바라보든, 창조주에 대한 증거는 명확합니다. (예레미야 10:12) 우리는 하늘의 피조물들의 이러한 외침에 마음으로 동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당신은 영광과 영예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계시 4:11) 하지만 많은 과학자들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들에 깃들여 있는 설계에 대해서는 감탄하면서도 “마음의 눈”으로 창조주에 대한 증거를 보지는 못합니다. (에베소 1:18)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자연계의 아름다움과 설계에 감탄하면서도 위대한 설계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훌륭한 그림에 감탄하면서도 빈 캔버스를 걸작으로 바꾸어 놓은 화가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만큼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하느님의 존재를 믿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켜 “변명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말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을 그릇 인도하는 “눈먼 인도자들”

11, 12. 예정론 교리는 무슨 가정에 근거한 것이며, 이 교리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1 많은 종교인들은 자신들의 숭배 방식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진심으로 믿고 있습니다. (로마 10:2, 3) 하지만 전반적으로 종교는 사실상 수많은 사람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도록 막아 온 인간 사회의 또 다른 부분을 구성합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두 가지 면을 살펴보겠습니다.

12 첫째로, 종교들은 거짓 가르침으로 하느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못하게 합니다. 일례로 예정론에 관한 가르침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이 교리는 하느님께서 미래를 아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모든 일의 결과를 미리 아셔야만 한다는 가정에 근거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정론은 각 개인의 미래를—좋은 미래든 나쁜 미래든—하느님께서 오래전에 미리 정해 놓으셨음을 시사합니다. 이러한 개념에 따르면, 오늘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과 악에 대한 책임이 하느님께 돌아가게 됩니다. 하느님의 주된 적대자인 사탄, 즉 성서에서 “세상의 통치자”라고 부르는 자에게 마땅히 돌아가야 할 책임을 하느님께 돌리는 것이므로, 그것은 결코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요한 14:30; 요한 첫째 5:19.

13. 하느님은 미래를 알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실 수 없는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왜 어리석은 생각입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3 예정론은 하느님을 중상하는 비성경적인 가르침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실 있는 일과 그분이 실제로 하시는 일을 혼동하게 하는 가르침입니다. 하느님께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미리 아실 수 있다는 사실은 성서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46:9, 10) 하지만 그분은 미래를 알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제어하실 수 없는 분이라거나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이 그분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당신의 체력이 강하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해서 당신은 무거운 물건을 보이는 대로 다 들어 올리고 싶어 하겠습니까? 물론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미래를 아실 능력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미리 아시거나 미리 정하셔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예지력을 선택적으로 그리고 선별적으로 사용하십니다. * 분명 예정론과 같은 거짓 가르침들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14. 종교 조직은 어떤 면으로도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려 왔습니까?

14 둘째로, 종교 조직은 그 성원들의 행실을 통해 하느님께 불명예를 돌립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를 것이 기대됩니다. 예수께서는 추종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할 것과 “세상의 일부가 아닌” 상태를 유지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요한 15:12; 17:14-16) 그리스도교국의 교직자들은 어떠합니까? 그들은 참으로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까?

15. (ㄱ) 교직자들은 나라들 간의 전쟁과 관련하여 어떤 일을 저질렀습니까? (ㄴ) 교직자들의 행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15 교직자들이 전쟁과 관련하여 저지른 일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나라들 간의 많은 전쟁을 지원하고 용인하고 심지어 그러한 전쟁에 앞장서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군대들을 축복하였고 죽이는 일을 정당화하였습니다. ‘그러한 교직자들은 반대편 교직자들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네모 안의 “하느님은 누구 편일까?” 참조)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하느님이 자기들을 후원하신다는 교직자들의 주장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성서의 표준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하면서 온갖 성적 부도덕을 용인하는 것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참으로 예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자 “눈먼 인도자들”이라고 부르신 종교 지도자들을 생각나게 합니다! (마태 7:15-23; 15:14) 교직자들의 행실은 하느님에 대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식게 만들었습니다.—마태 24:12.

누가 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16. 누가 참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에 대답하려면, 왜 우리의 시선을 성서로 돌려야 합니까?

16 세상에서 탁월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했다면, 누가 참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답하려면 우리의 시선을 성서로 돌려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어떻게 영광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시며, 자신의 말씀인 성서 가운데 표준을 정해 두십니다. (이사야 42:8)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세 가지 방법과 각 경우에 오늘날 누가 참으로 그렇게 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17. 여호와께서는 그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그분의 뜻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면임을 친히 어떻게 나타내셨으며, 오늘날 누가 세계 전역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17 첫째로, 우리는 하느님의 이름을 찬양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 가운데 매우 중요한 부면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예수에게 하신 말씀에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으시기 며칠 전에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응답으로 이러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내가 영광스럽게 하였고, 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 (요한 12:28) 이것은 틀림없이 여호와께서 친히 하신 말씀입니다. 그 응답을 보면, 그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그분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누가 세계 전역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알리고 찬양함으로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들은 여호와의 증인인데, 235개 나라와 지역에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시 86:11, 12.

18. 우리는 하느님을 “진리”로 숭배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으며, 어느 단체가 한 세기가 넘도록 성서 진리를 가르쳐 왔습니까?

18 둘째로,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진리를 가르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참 숭배자들이 “[하느님]을 ··· 진리로 숭배”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4:24) 우리는 하느님을 “진리”로 숭배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식별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성서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거나 하느님과 그분의 뜻을 왜곡하는 교리들을 배척해야 합니다. 그 대신 하느님의 말씀의 순결한 진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한 진리들 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는 가장 높으신 하느님이며, 이러한 지위에 대한 영광은 오로지 그분에게만 돌아갑니다. (시 83:18)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의 통치자로 임명되신 분입니다. (고린도 첫째 15:27, 28) 하느님의 왕국은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고 이 땅과 땅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그분의 목적을 성취시킬 것입니다. (마태 6:9, 10) 이 왕국에 대한 좋은 소식은 온 땅에 전파되어야 합니다. (마태 24:14) 이러한 귀중한 진리들을 한 세기가 훨씬 넘도록 충실하게 가르쳐 온 단체는 단 하나—여호와의 증인뿐입니다!

19, 20. (ㄱ) 그리스도인의 훌륭한 행실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오늘날 누가 훌륭한 행실을 유지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 무슨 질문들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19 셋째로, 우리는 하느님의 표준과 일치하게 생활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썼습니다.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여러분의 행실을 훌륭하게 유지하십시오. 그리하면 그들이 여러분을 행악자라고 나쁘게 말하는 그 일에서, 그들이 목격 증인이 된 여러분의 훌륭한 행실의 결과로, 그분이 검사하시는 날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 첫째 2:12) 그리스도인들의 행실은 그들의 믿음을 반영합니다. 관찰자들이 그 점을 관찰하게 될 때,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의 훌륭한 행실이 그들이 가진 믿음의 직접적인 결과임을 이해하게 될 때, 하느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됩니다.

20 오늘날 누가 훌륭한 행실을 유지함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과연 어느 종교 단체가 많은 정부들에게 평화적이고 세금을 잘 내며 법을 준수하는 시민이라는 칭찬을 받고 있습니까? (로마 13:1, 3, 6, 7) 어떤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동료 신자들과의 연합—인종적, 국가적, 민족적 차이를 초월한 연합—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습니까? (시 133:1; 사도 10:34, 35) 어느 단체가 전 세계적으로 법과 가족 가치관과 성서의 도덕에 대한 존중심을 고취시키는 성서 교육 활동을 벌이는 단체로 인정받고 있습니까? 이러한 부면들을 비롯하여 여러 부면에서 훌륭한 행실로 그렇게 하고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는 단체는 단 하나—여호와의 증인뿐입니다!

당신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21. 우리가 개인적으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1 우리 각자는 ‘나는 개인적으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라고 자문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시편 148편에 따르면, 대부분의 창조물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천사들, 물질적 하늘, 땅과 동물—그 모두가 여호와를 찬양합니다. (1-10절)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 않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일입니다!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방법으로 생활하는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고 있는 다른 창조물들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됩니다. (11-13절) 당신의 생명을 이보다 나은 방법으로 사용할 수는 없습니다.

2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린다면 어떤 면으로 축복을 받게 되며, 어떠한 결심을 해야 합니까?

22 여호와께 영광을 돌린다면, 당신은 여러 가지 면으로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낼 때,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고 하늘의 아버지와 평화롭고 보람 있는 관계를 누리게 됩니다. (로마 5:10)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들을 찾을 때, 더 낙관적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됩니다. (예레미야 31:12) 그런 사람이 될 때, 당신은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고 목적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도와줄 수 있게 되며, 그로 인해 당신 자신도 더 큰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사도 20:35) 지금부터 영원히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기로 굳게 결심하는 사람들 가운데 당신도 포함되기를 바랍니다!

[각주]

^ 2항 “생체 모방 공학”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biomimetics)는 “생체”를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 비오스와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 8항 물질적 하늘이 하느님의 지혜와 능력을 어떻게 반영하는지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한 「여호와께 가까이 가십시오」 책 5장과 17장 참조.

^ 13항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한 「성경 통찰」, 제2권, 420면 참조.

기억하십니까?

● 전반적으로 과학계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종교 조직은 어떤 두 가지 면으로 사람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였습니까?

●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까?

● 당신이 개인적으로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구 질문]

[12면 네모]

“하느님은 누구 편일까?”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독일 공군으로 참전하였다가 나중에 여호와의 증인이 된 한 사람은 이렇게 회상한다.

“그 여러 해 동안의 전쟁 중에 사실상 모든 교파—가톨릭교, 루터교, 감독 교회 등—의 교직자가 폭격기와 그 대원들이 폭탄을 떨어뜨릴 임무를 띠고 출격하기 전에 그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고 나는 혼란에 빠졌다. ‘하느님은 누구 편일까?’ 하고 종종 생각해 보았다.

독일군이 착용했던 벨트의 버클에는 고트 미트 운스(하느님은 우리와 함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같은 종교를 믿고 같은 하느님께 기도하는 상대편 군인들과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궁금하게 여겼다.”

[10면 삽화]

세계 전역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하느님께 참으로 영광을 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