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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하십시오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하십시오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하십시오

‘여러분의 믿음에 인내를 공급하십시오.’—베드로 둘째 1:5-7.

1, 2. 인내란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내가 필요합니까?

여호와의 큰 날이 매우 가깝습니다. (요엘 1:15; 스바냐 1:14) 하느님에 대한 충절을 유지하기로 결심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의 주권이 입증될 그때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하지만 그때가 오기까지 우리는 믿음 때문에 미움을 받고 모욕과 박해를 당하며 죽음에 직면합니다. (마태 5:10-12; 10:22; 계시 2:10) 따라서 인내 즉 역경을 견디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사도 베드로는 ‘여러분의 믿음에 인내를 공급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 (베드로 둘째 1:5-7)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예수께서 “끝까지 인내한 사람은 구원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마태 24:13.

2 또한 우리는 질병이나 사별 및 그 밖의 시련들을 겪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잃게 된다면 사탄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누가 22:31, 32) 여호와의 지원이 있을 때, 우리는 다양한 시련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첫째 5:6-11) 우리가 믿음이 약해지는 일 없이 인내하면서 여호와의 날을 기다릴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실례들을 고려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병도 그들을 중단시키지 못했다

3, 4. 질병이 있어도 충실하게 여호와를 섬길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예를 드십시오.

3 오늘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질병을 기적적으로 고쳐 주시지는 않지만, 질병을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시 41:1-3) 섀런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기억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는 한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어요. 태어날 때부터 뇌성 마비로 인해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빼앗기고 말았지요.” 섀런은 여호와를 알게 되고 완전한 건강에 대한 그분의 약속에 관해 배우면서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말하고 걷는 데 어려움이 많지만,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기쁨을 누립니다. 약 15년 전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몸은 계속 쇠약해지겠지만, 하느님께 대한 신뢰와 그분과의 관계는 생명선과도 같습니다. 여호와의 백성 중에 있으면서 그분의 변함없는 지원을 받고 있기에 나는 참으로 행복합니다!”

4 사도 바울은 “우울한 영혼들에게 위안의 말을 하”라고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권고하였습니다. (데살로니가 첫째 5:14) 깊은 실망감을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인해 우울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1993년에 섀런은 이렇게 썼습니다. “몹시 낭패를 느끼면서, ··· 3년간 심한 우울증을 앓게 되었지요. ··· 하지만 장로들로부터 위로와 조언을 받았습니다. ··· 여호와께서는 「파수대」를 통해 친절하시게도 심한 우울증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 주셨어요. 참으로, 그분은 자기 백성을 돌보시고 우리 감정을 이해하십니다.” (베드로 첫째 5:6, 7) 섀런은 지금도 여호와의 큰 날을 기다리면서 충실하게 하느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5. 그리스도인이 심한 스트레스를 인내할 수 있다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5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과거에 겪은 일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할리는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치열한 전투를 목격하였으며, 그 후로 전투에 관한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잠을 자다가 “위험하다! 조심해!” 하고 소리치곤 하였습니다. 잠에서 깨어 보면,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곤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경건한 삶을 추구할 수 있었으며,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꿈을 꾸는 횟수와 강도가 줄어들었습니다.

6. 한 그리스도인은 감정적 장애에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6 조울병(양극성 장애)이라는 진단을 받은 한 그리스도인은 호별 방문 봉사를 하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끈기 있게 전파 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봉사의 직무가 자기 자신과 호의적인 반응을 나타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디모데 첫째 4:16) 때로는 도저히 초인종을 누를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했다고 말합니다. “잠시 후에는 으레 감정을 추스르고는 다음 집으로 가서 다시 봉사하곤 하였습니다. 봉사의 직무에 계속 참여함으로 합리적인 정도의 영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참석하는 것도 도전이 되었지만, 이 형제는 영적 교제의 가치를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집회에 가기 위해 필요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히브리 10:24, 25.

7. 일부 사람들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집회에 참석하는 데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도 어떻게 인내하고 있습니까?

7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공포증—특정한 상황이나 대상에 대한 과도한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심지어 집회에 참석하는 것조차도 두려워할지 모릅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 집회에서 해설하거나 신권 전도 학교에서 연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일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지만 그들은 인내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이 집회에 참석하고 참여하는 것에 큰 격려를 받습니다.

8. 감정적인 어려움에 대처하는 데 무엇이 특히 효과가 있습니까?

8 휴식과 수면을 더 취하는 것이 감정적인 어려움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치료를 받는 것도 바람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로 하느님을 의지하는 것은 특히 효과가 있습니다. 시편 55:22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너의 무거운 짐을 여호와 그분에게 내맡겨라. 그러면 그분이 너를 붙들어 주시리니, 그분은 결코 의로운 자가 흔들리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리라.” 그러므로, 반드시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도록 하십시오.—잠언 3:5, 6.

사별의 아픔을 인내하다

9-11. (ㄱ) 사랑하는 사람이 사망할 경우, 슬픔을 인내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ㄴ) 안나의 본은 사별의 아픔을 인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9 죽음이 가족을 갈라놓을 때, 그 크나큰 상실감은 깊은 슬픔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자 슬피 울었습니다. (창세 23:2) 완전한 사람이었던 예수께서도 자신의 벗 나사로가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한 11:35) 따라서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앗아 갈 때 우리가 슬픔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부활이 있을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도 24:15) 따라서 “희망 없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하지” 않습니다.—데살로니가 첫째 4:13.

10 사별의 아픔을 어떻게 이겨 낼 수 있습니까? 한 가지 예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개 우리는 친구가 먼 여행을 떠났다고 해서 두고두고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가 돌아오면 다시 만나리라는 기대 때문입니다. 충실한 그리스도인의 죽음에 대해 그와 비슷한 견해를 갖는다면 슬픔이 줄어들 것입니다. 그가 부활받을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전도 7:1.

11 “모든 위로의 하느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은 사별의 아픔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1:3, 4) 1세기에 과부인 안나가 어떻게 했는지를 숙고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그는 결혼한 지 겨우 7년 만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84세가 되었을 때에도 여전히 성전에서 여호와께 신성한 봉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2:36-38) 그처럼 영적인 일에 전념하는 생활은 슬픔과 외로움을 달래는 데 틀림없이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왕국 전파 활동을 비롯한 그리스도인 활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한다면, 사별의 아픔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련에 직면할 때

12.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생활에서 무슨 시련을 인내해 왔습니까?

12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생활에서 시련을 인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배우자의 간음은 참으로 비참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배신을 당한 배우자는 충격과 슬픔에 휩싸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을 금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간단한 일을 할 때도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서 실수를 하거나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무고한 배우자는 먹지도 못하고 몸무게가 줄고 감정적으로 혼란을 겪을지 모릅니다. 그리스도인 활동에 참여하기도 어려울 수 있습니다. 또한 자녀들은 얼마나 큰 영향을 받겠습니까!

13, 14. (ㄱ) 솔로몬이 성전 낙성식 때 한 기도로부터 어떤 격려를 받게 됩니까? (ㄴ)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우리가 그러한 시련을 겪을 때, 여호와께서는 필요한 도움을 베푸십니다. (시 94:19)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사실이 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의 낙성식에서 한 기도에 나타나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느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전체가 각자 자기 마음의 재앙을 앎으로 말미암아, 어떤 기도나 어떤 은혜를 구하는 청이라도 드리며, 그들이 정녕 이 집을 향하여 자기 손바닥을 펴거든, 당신이 친히 하늘 곧 당신의 정해진 처소에서 들어주시기를 비오니, 당신은 용서하고 행동하시어 각자에게 그의 모든 길에 따라 갚아 주셔야 합니다. 당신은 그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만이 홀로 모든 인간의 아들들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그리하여 그들로 당신이 우리의 조상에게 주신 땅의 표면에서 살아 있는 모든 날 동안에 당신을 두려워하게 하셔야 합니다.”—열왕 첫째 8:38-40.

14 계속 성령을 구하는 기도를 하는 것은 특히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마태 7:7-11) 영의 열매에는 기쁨과 평화 같은 특성들이 포함됩니다. (갈라디아 5:22, 23)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때—슬픔이 기쁨으로 바뀌고 평화가 고뇌를 대신하게 될 때—우리는 참으로 안도감을 맛보게 됩니다!

15. 어떤 성구들이 염려를 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15 심한 스트레스를 인내해야 한다면 어느 정도의 염려는 피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한다면, 적어도 얼마의 근심은 덜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또는 무엇을 마실까 하고 여러분의 영혼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을 입을까 하고 여러분의 몸에 대하여 더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 그러므로 왕국과 [하느님]의 의를 계속 첫째로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더하여질 것입니다.” (마태 6:25, 33, 34) 사도 베드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여러분의 염려를 모두 [하느님]에게 내맡기십시오. 그분이 여러분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첫째 5:6, 7)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적절한 일입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을 다한 후에는, 염려하기보다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시편 필자는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굴려 보내고 그분을 의뢰하여라. 그분이 친히 행동하시리라.”—시 37:5.

16, 17. (ㄱ) 우리가 염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빌립보 4:6, 7을 적용한다면 어떤 유익을 얻게 될 것입니까?

16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러분의 청원을 하느님께 알리십시오. 그러면 모든 생각을 능가하는 하느님의 평화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줄 것입니다.” (빌립보 4:6, 7) 물론, 아담의 불완전한 후손들이 염려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로마 5:12) 에서의 헷 족속 아내들은 에서의 경건한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에게 “영의 비통함의 근원”이었습니다. (창세 26:34, 35) 질병은 디모데와 드로비모 같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틀림없이 염려의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디모데 첫째 5:23; 디모데 둘째 4:20) 바울은 동료 신자들을 염려하였습니다. (고린도 둘째 11:28) 하지만 “기도를 들으시는 분”은 언제라도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십니다.—시 65:2.

17 우리는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는 동안, “평화의 하느님”으로부터 지원과 위로를 받습니다. (빌립보 4:9)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선하시고 기꺼이 용서하시며” “우리가 흙임을 기억”하십니다. (탈출 34:6; 시 86:5; 103:13, 14) 그러므로 ‘우리의 청원을 그분께 알리도록’ 하십시다. 그렇게 할 때 “하느님의 평화”—인간의 이해를 초월하는 평온함—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18. 어떻게 하면 욥기 42:5에 언급된 것처럼 하느님을 ‘볼’ 수 있습니까?

18 우리는 기도가 응답될 때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욥은 시련을 인내하고 난 후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여호와]에 대해 풍문으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제 눈이 당신을 분명히 봅니다.” (욥 42:5) 우리는 이해와 믿음과 감사의 눈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는지 숙고해 봄으로, 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방법으로 그분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과 누리는 그러한 친밀함은 참으로 우리의 마음과 정신에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19. 우리가 ‘염려를 모두 여호와께 내맡긴다’면 어떤 결과가 있게 될 것입니까?

19 우리가 ‘염려를 모두 여호와께 내맡긴다’면, 우리의 마음과 정신력을 지켜 주는 내적인 평온함 가운데 시련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 불안감과 두려움과 초조함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상황이나 염려로 인해 정신적으로 동요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20, 21. (ㄱ) 스데반의 경우는 박해를 받을 때 평온함을 누릴 수 있음을 어떻게 증명합니까? (ㄴ) 시련을 인내하면서 평온함을 누린 현대의 실례를 드십시오.

20 제자 스데반은 극심한 믿음의 시험을 인내할 때 평온함을 유지하였습니다. 그가 마지막 증언을 하기 전에, 산헤드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를 주시하여 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사도 6:15) 그의 얼굴에는 하느님의 소식을 전하는 천사와 같은 평온함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스데반이 예수의 죽음에 대해 재판관들에게 죄가 있다는 사실을 폭로하자, 그들은 “마음이 상해서 그에 대해 이를 갈기 시작하였습니다.”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주시하고 하느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으로 힘을 얻은 스데반은 죽기까지 충실을 증명하였습니다. (사도 7:52-60) 우리는 환상을 받지는 않지만, 박해를 받을 때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온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2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의 손에 죽임을 당한 몇몇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살펴보십시오. 한 그리스도인은 법정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말을 들은 다음, 우리 주께서 하신 ‘죽기까지 충실하라’는 말씀과 다른 몇 가지 말씀을 언급하였으며,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지금 부모님이 상상하실 수 없을 정도로 평화롭고 평온합니다!” 참수형을 눈앞에 둔 한 젊은 그리스도인은 부모에게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벌써 자정이 지났습니다. 저에게는 아직도 생각을 바꿀 시간이 남아 있습니다. 아! 제가 우리 주를 부인하고 나서도 이 세상에서 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결코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제가 행복하고 평화로운 가운데 이 세상을 떠난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을 지원하신다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우리도 인내할 있다!

22, 23. 우리는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는 가운데 무엇을 확신할 수 있습니까?

22 현재 우리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은 어려움은 겪지 않고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느님을 두려워한 욥의 다음과 같은 말은 정말로 참됩니다.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사는 날이 짧고 소란만 가득합니다.” (욥 14:1) 아마 우리 가운데 부모들은 자녀를 영적으로 인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자녀들은 학교에서 시련을 인내해야 하지만, 그들이 여호와와 그분의 의로운 원칙을 확고히 옹호할 때 부모는 매우 기뻐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 중에는 직장에서 어려움과 유혹을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 날마다 우리를 위하여 짐을 지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시 68:19.

23 우리는 자신이 평범한 사람에 불과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하는 일과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위해 나타내는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임을 기억하도록 하십시오. (히브리 6:10) 우리는 그분의 도움에 힘입어 믿음의 시험을 인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나 계획을 세울 때나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염두에 두도록 하십시오. 그렇게 한다면,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축복과 지원이 있을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 그리스도인에게 왜 인내가 필요합니까?

● 질병과 사별의 아픔을 인내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 기도는 시련을 인내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 여호와의 날을 기다리면서 인내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연구 질문]

[29면 삽화]

여호와를 의지하면 사별의 아픔을 인내할 수 있다

[31면 삽화]

마음에서 우러나온 기도는 믿음의 시험을 인내하는 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