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사람과의 대화
하느님은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호와의 증인은 이웃 사람들과 흔히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눕니다. 박지희라는 증인이 이정숙이라는 사람의 집에 찾아가 대화를 나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하느님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 수 있습니까?
박지희: 오늘은 이 지역에 사시는 모든 분에게 이 전도지를 전해 드리는 중이었어요. 「진리를 알고 싶으십니까?」라는 전도지인데요. 한번 읽어 보시겠어요?
이정숙: 종교 얘기인가요?
박지희: 네, 맞아요. 여기 표지에 보시면 여섯 가지 질문이 있는데요. 이중에 어떤 질문이 ···
이정숙: 잠깐만요. 저랑 얘기하면 시간 낭비예요.
박지희: 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여쭤 봐도 될까요?
이정숙: 사실 난 내가 하느님을 믿는지 안 믿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거든요.
박지희: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전부터 늘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이정숙: 아니요, 어릴 때는 교회에 다녔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 나간지 꽤 됐어요.
박지희: 그렇군요. 그건 그렇고 저는 박지희라고 해요.
이정숙: 이정숙이라고 해요.
박지희: 반갑습니다.
이정숙: 네, 반가워요.
박지희: 이렇게 찾아뵌 건 제 신앙을 강요하기 위한 건 아니에요. 아까 말씀하셔서 여쭙는 건데, 혹시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이정숙: 네. 어머니가 17년 전 교통사고를 당하셨어요.
박지희: 저런,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많이 다치셨나요?
이정숙: 네, 지금까지도 거동을 못하세요.
박지희: 정말 마음 아픈 일이네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이정숙: 그렇죠. 하느님이 계시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게 하실 수 있지 하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더라고요. 하느님은 왜 우리가 이런 고난을 겪게 하시는 거죠?
이유를 물어보아서는 안 됩니까?
박지희: 그렇게 궁금해하시는 것이나 느끼시는 것도 당연하지요. 고난을 겪을 때 그 이유가 궁금한 건 전혀 잘못이 아니에요. 사실, 성서에 나오는 훌륭한 믿음이 있었던 남녀 중에도 그 점을 궁금해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이정숙: 그래요?
박지희: 네. 성서에서 직접 그 예를 보여 드려도 괜찮을까요?
이정숙: 네, 그러세요.
박지희: 하박국 1:2, 3에는 충실한 예언자 하박국이 하느님께 한 이런 질문이 나와요. “오 여호와여, 언제까지 제가 도와 달라고 부르짖어야 하며, 당신은 듣지 않으시렵니까? 언제까지 제가 폭력으로부터 구해 달라고 당신에게 청해야 하며, 당신은 구원해 주지 않으시렵니까? 어찌하여 당신은 저로 유해한 것을 보게 하십니까?” 궁금하게 여기시는 질문과 비슷하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이정숙: 그러네요.
박지희: 하느님께서는 그런 질문을 했다고 하박국을 꾸짖지도 않으셨고 그가 믿음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말씀하지도 않으셨지요.
이정숙: 흥미로운 사실이네요.
여호와께서는 고난을 미워하십니다
박지희: 성서에서는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하느님께서 눈여겨보고 관심을 기울이신다고 가르칩니다.
이정숙: 그게 무슨 말이죠?
박지희: 한 가지 예를 보여 드릴게요. 탈출기 3:7인데 좀 읽어 주시겠어요?
이정숙: 네. “여호와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괴로움을 똑똑히 보았고,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로 말미암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나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희: 감사합니다. 이 성구를 보면,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이 겪는 고난을 눈여겨보신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정숙: 네, 그런 것 같네요.
박지희: 맞습니다. 게다가 그분은 상황을 대충 아시는 분이 아니에요. 방금 읽으신 구절의 맨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번 보시면, 하느님께서는 “나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죠. 냉정하거나 무관심한 하느님이라면 과연 이런 말씀을 하시겠어요?
이정숙: 그렇지 않겠죠.
박지희: 물론 눈여겨본다고 해서 꼭 그 상황에 대해 감정을 느껴서 마음이 움직이게 되는 것은 아니지요.
이정숙: 그야 그렇죠.
박지희: 그 점을 생각하시면서, 하느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었던 또 다른 예를 읽어 보도록 하지요. 이사야 63:9인데요, 이 구절 앞부분에 보면 “그들의 모든 고난 중에 그 고난이 그분을 괴롭게 하였다”라고 되어 있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의 백성이 고난을 겪을 때 하느님도 영향을 받으신 게 아닐까요?
이정숙: 네, 확실히 그런 것 같네요.
박지희: 사실 하느님은 우리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우리가 고난을 겪는 것을 몹시 싫어하세요. 그분은 우리가 고통스러워하면 함께 고통스러워하시지요.
그분은 왜 기다리고 계십니까?
박지희: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얘기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이정숙: 네, 괜찮아요.
박지희: 우리는 성서에서 하느님의 능력에 대해 무엇이라고 가르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해요. 예레미야 10:12을 보여 드리고 싶은데 좀 읽어 주시겠어요?
이정숙: 그러죠. “그분은 자신의 능력으로 땅을 만드신 분이요, 자신의 지혜로 생산적인 땅을 굳게 세우신 분이요, 자신의 이해력으로 하늘을 펴신 분이다.”
박지희: 감사합니다. 이 구절을 잠깐 생각해 보세요. 하느님께서 드넓은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걸 창조하시는 데는 엄청난 능력이 필요하지 않으셨겠어요?
이정숙: 당연히 그랬겠죠.
박지희: 만물을 창조할 능력이 있으신 하느님이라면, 당연히 그 만드신 것들을 통제할 능력도 가지고 계시지 않을까요?
이정숙: 가지고 계시겠죠.
박지희: 그럼 어머니 경우를 다시 생각해 보죠. 어머니께서 고통을 당하시는 걸 보면서 괴로우신 이유가 뭔가요?
이정숙: 사랑하니까 그렇죠. 어머니이니까요.
박지희: 능력만 있으시다면 당장이라도 어머니를 고쳐 드리지 않으시겠어요?
이정숙: 당연히 그러겠죠.
박지희: 그러면 좀 생각해 보죠. 성서에서는 하느님께서 우리가 겪는 고난을 눈여겨보시고, 우리와 함께 아파하시고,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고 알려 주지요. 그런 하느님이 우리가 고난을 겪을 때 나서서 즉각 고난을 끝내 버리지 않으시려면 얼마나 참고 또 참으셔야 하겠어요?
이정숙: 그렇게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박지희: 하느님께서 개입하셔서 우리가 겪는 문제들을 끝내지 않으시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닐까요? *
이정숙: 흠, 그럴 수 있겠네요.
박지희: 그런데 집 안에 전화가 온 것 같네요. 다음에 다시 와서 이 점에 대해 더 이야기 나눌게요.
이정숙: 그렇게 하세요. 고마워요. *
혹시 성서에 대해 알고 싶은 점이 있으십니까? 여호와의 증인의 신앙이나 종교 활동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여호와의 증인에게 주저하지 말고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증인들은 분명 기꺼이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 61항 더 자세히 알아보려면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한 「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 제11장 참조.
^ 64항 앞으로 이 연재 기사에서는 하느님께서 고난을 허용하시는 이유에 대해 다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