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우폴과 같이 격렬한 교전이 일어난 지역에서는 전기와 난방이 끊겼고, 전화와 인터넷이 불안정합니다. 많은 집의 유리창이 파손됐으며, 식품과 식수가 부족합니다. 2500명이 넘는 형제 자매들이 마리우폴을 떠나지 못하고 남아 있습니다. 부차, 체르니히우, 호스토멜, 이르핀, 키이우, 수미와 같은 몇몇 도시들에서는 “인도주의 통로”가 개방되어 일부 사람들이 도피할 수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형제 자매 수십 명도 안전한 장소로 대피했습니다.
호스토멜에 살던 장로이자 파이오니아인 36세 된 한 형제는 아내와 부모님과 함께 도피했습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교전이 시작되던 때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 집 위로 헬리콥터들이 날아다녔습니다. 도로 위에는 언제나 군용 차량들이 가득했죠. 군인들이 우리 집으로 쳐들어왔을 때 우리는 지하실에 있었어요. 그중 한 명이 지하실을 향해 총을 여러 발 쏘았습니다. 총알이 날아와 어머니의 비상 가방에 박히긴 했지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방에서 폭탄이 터지고 총격전이 벌어지던 3, 4시간 동안 우리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숨죽인 채 있었어요. … 다음 날 아침에 차를 타고 떠나고 있는데 근처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도로에 탱크들이 있었죠. … 떠나는 길이 아주 위험하긴 했지만 도시에 머무르는 건 그보다 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이 모든 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 성경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 배웠죠. 예를 들어,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는 법, 필수품으로 만족하는 법, 가장 위급한 때에 여호와를 신뢰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느님께서 우크라이나 형제 자매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어려움을 온전히 알고 계시다고 확신합니다. 그분은 틀림없이 그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베드로 후서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