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당신의 생각을 틀 잡고 있습니까?

누가 당신의 생각을 틀 잡고 있습니까?

“더는 이 세상 제도를 따라 틀 잡히지 마십시오.”​—로마 12:2.

노래: 69, 57

1, 2. (ㄱ)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너그러워지라는 베드로의 조언에 어떤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기사 제목 위에 있는 삽화 참조) (ㄴ) 예수께서는 왜 그런 반응을 보이셨습니까?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국을 회복시키실 분으로 기대했던 예수께서 자신이 곧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십시오. 결코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사탄, 내 뒤로 물러나시오! 당신은 나에게 걸림돌이오. 당신이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오.”​—마태 16:21-23; 사도 1:6.

2 그 말씀을 통해, 예수께서는 하느님에게서 나온 생각과 사탄의 지배를 받는 이 세상에서 나온 생각을 구분하셨습니다. (요한 1서 5:19) 베드로는 예수께 세상 사람들처럼 몸을 사리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생각은 다르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앞으로 닥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하신 대답을 통해 자신이 세상의 생각을 배척하고 여호와의 생각을 따른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3. 세상의 생각을 배척하고 여호와의 생각을 따르기가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3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의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물론 우리는 자신의 행실을 하느님의 요구 조건과 일치하게 변화시켰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여호와의 생각과 일치시키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려면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반면에 세상의 생각을 받아들이는 데는 노력이 거의 혹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우리 주변이 온통 세상의 영으로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2:2) 또한 세상의 사고방식은 대개 이기심을 부추기기 때문에 쉽게 마음이 끌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처럼 생각하기는 어렵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기는 너무나도 쉽습니다.

4. (ㄱ) 세상이 우리의 생각을 틀 잡게 하면 어떻게 될 수 있습니까? (ㄴ) 이 기사가 우리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것입니까?

4 하지만 세상이 우리의 생각을 틀 잡게 한다면, 우리는 이기적이 되고 도덕 표준을 스스로 정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마가 7:21, 22) 따라서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이 기사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는 우리의 생각을 여호와의 생각과 일치시킬 때 왜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유익을 얻게 되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또한 세상의 생각에 따라 틀 잡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아볼 것입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어떻게 다양한 문제에 대한 여호와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것을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 수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여호와의 생각은 유익하다

5. 일부 사람은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틀 잡는 것에 왜 거부감을 느낍니까?

5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생각을 틀 잡거나 영향을 주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들은 “나는 내가 알아서 생각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자신이 스스로 결정을 내리며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통제를 받고 싶어 하지 않으며, 자신의 개성이 무시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

6. (ㄱ)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자유를 주십니까? (ㄴ) 그 자유는 절대적인 것입니까?

6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여호와의 생각과 일치시키기 위해 개인적인 생각이나 견해를 모두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린도 후서 3:17은 “여호와의 영이 있는 곳에는 자유가 있다”고 알려 줍니다. 우리는 자신만의 개성을 발전시킬 자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 기호와 관심 분야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자유에 아무런 제약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베드로 전서 2:16 낭독)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에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성경에 나오는 그분의 생각을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까, 아니면 유익을 주는 것입니까?

7, 8. 여호와의 생각을 본받는다고 해서 왜 자유를 빼앗기게 되는 것은 아닙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오.

7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좋은 가치관을 심어 주려고 노력합니다. 그들은 자녀에게 정직하고 부지런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고 가르칠지 모릅니다. 그것은 자녀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나중에 성인이 되어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도록 준비시켜 주는 것입니다. 자녀는 다 자라서 집을 떠나게 되면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생깁니다. 그가 부모에게 배운 가치관에 따라 살아가기로 선택한다면, 후회할 만한 결정을 내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와 염려를 피할 수 있습니다.

8 훌륭한 부모처럼 여호와께서도 자신의 자녀들이 가장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사야 48:17, 18) 따라서 그분은 우리에게 도덕적인 행실과 대인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런 문제에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생각을 배우고 그분의 가치관을 본받도록 권하십니다. 그것은 우리의 자유를 빼앗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분의 생각을 본받을 때 우리는 사고력을 키우고 생각을 넓힐 수 있습니다. (시 92:5; 잠언 2:1-5; 이사야 55:9) 또한 우리의 개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행복을 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시 1:2, 3) 그렇습니다. 여호와처럼 생각하는 것은 정말 여러모로 유익합니다!

여호와의 생각은 우월하다

9, 10. 여호와의 생각이 세상의 생각보다 우월하다는 것이 어떻게 증명되었습니까?

9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이 그분의 생각을 본받고 싶어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하느님의 생각이 세상의 생각보다 훨씬 우월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도덕적인 행실, 가족 관계, 좋은 직업과 같은 삶의 여러 부면에 대해 많은 조언을 합니다. 그중 대부분은 여호와의 생각과 어긋납니다. 예를 들어, 세상은 종종 자기를 과시하는 태도를 조장합니다. 또한 성적 부도덕을 용인하도록 부추깁니다.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사소한 이유로 별거나 이혼을 해도 괜찮다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세상이 제시하는 그런 조언은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됩니다. 하지만 일부 조언은 우리 시대에 더 잘 맞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10 예수께서는 “지혜는 그것이 한 일로 의롭다는 것이 증명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1:19) 세상은 과학 기술 분야에서 대단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하지만 전쟁, 인종 차별, 범죄와 같이 행복을 가로막는 큰 문제들을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세상의 느슨한 도덕관은 어떠합니까? 많은 사람은 이런 도덕관이 가정 파탄이나 질병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고 있다고 인정합니다. 반면에 하느님의 견해를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들은 더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생활을 하여 건강을 지키고, 전 세계 동료 형제 자매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다. (이사야 2:4; 사도 10:34, 35; 고린도 전서 6:9-11) 이 점은 여호와의 생각이 세상의 생각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습니까?

11. 모세는 누구의 생각을 따랐으며,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11 성경에 나오는 참숭배자들은 여호와의 생각이 탁월하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이집트인들의 모든 지혜로” 교육받았지만 하느님께 “지혜의 마음”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사도 7:22; 시 90:12) 또한 여호와께 “저에게 주의 길을 알려 주십시오”라고 간청했습니다. (출애굽 33:13) 모세는 여호와의 생각을 따랐기 때문에,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뛰어난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경에 기록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히브리 11:24-27.

12. 사도 바울은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습니까?

12 사도 바울은 지성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고 적어도 두 가지 언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 5:34; 21:37, 39; 22:2, 3) 하지만 그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문제에서 세상의 지혜를 배척했습니다. 바울은 성경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사도행전 17:2; 고린도 전서 2:6, 7, 13 낭독) 그 결과 바울은 봉사의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고 영원한 상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디모데 후서 4:8.

13. 우리의 생각을 여호와의 생각과 일치시킬 책임은 누구에게 있습니까?

13 분명 오늘날에도 하느님의 생각은 세상의 생각보다 우월합니다. 하느님의 생각을 따르면 가장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 역시 우리 개개인의 생각을 통제하려 하지 않으며, 장로들도 그러합니다. (마태 24:45; 고린도 후서 1:24) 그리스도인 각자는 자신의 생각을 하느님의 생각과 일치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을 따라 틀 잡히지 마십시오

14, 15. (ㄱ) 여호와처럼 생각하려면 무엇을 묵상해야 합니까? (ㄴ) 로마서 12:2에 따르면, 우리는 왜 세상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오.

14 로마서 12:2은 이렇게 말합니다. “더는 이 세상 제도를 따라 틀 잡히지 말고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어 하느님의 선하고 받아들이실 만하고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십시오.” 이 영감받은 말씀을 보면 진리를 배우기 전에 무엇이 자신의 생각을 틀 잡았든, 하느님의 생각에 자신의 생각을 맞추어 나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의 생각은 유전적인 요인과 과거의 경험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굳어 있지 않으며 계속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어떻게 변하느냐는 상당 부분 우리의 정신에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계속 생각하기로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생각을 묵상한다면 그분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생각을 그분의 생각에 일치시키려는 마음이 자랄 것입니다.

15 하지만 여호와의 생각으로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하려면 “더는 이 세상 제도를 따라 틀 잡히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신에 하느님의 생각과 반대되는 생각이나 견해를 더는 받아들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첫 단계를 밟는 것이 중요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음식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강을 위해 영양가가 풍부한 음식을 먹습니다. 하지만 그에 더해 상한 음식을 계속 먹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와 비슷하게 우리의 정신을 여호와의 생각으로 채우면서도 동시에 세상의 생각으로 더럽히고 있다면 유익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16. 우리는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까?

16 우리가 세상의 생각을 전혀 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세상에서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생각에 어느 정도 노출됩니다. (고린도 전서 5:9, 10) 전파 활동을 수행할 때에도 잘못된 생각이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처럼 우리는 성경에 어긋나는 견해를 접할 수밖에 없지만 결코 그것을 계속 생각하거나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사탄이 좋아하는 생각을 예수처럼 즉시 물리쳐야 합니다. 그에 더해 불필요하게 세상의 생각을 접하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잠언 4:23 낭독.

17. 세상의 생각에 불필요하게 노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 예를 들어 우리는 누구를 가까운 친구로 사귈지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그들의 생각에 물들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잠언 13:20; 고린도 전서 15:12, 32, 33) 오락을 선택할 때도 신중해야 합니다. 진화론, 폭력, 부도덕을 조장하는 오락을 멀리한다면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거스르는” 견해로 우리의 생각을 더럽히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고린도 후서 10:5.

우리는 자녀가 해로운 오락을 멀리하도록 도와줍니까? (18, 19항 참조)

18, 19. (ㄱ) 우리는 교묘하게 숨어 있는 세상의 생각을 왜 특히 경계해야 합니까? (ㄴ) 우리는 어떤 자문을 해 보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또한 우리는 쉽게 알아채기 어려운 세상의 생각을 분별하고 물리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뉴스 보도는 교묘하게 특정한 정치적 견해를 지지합니다. 일부 기사들은 특정 인물을 다루면서 세상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달성하도록 권장합니다. 어떤 영화와 책은 “나 먼저”, “우리 가족 먼저”와 같은 생각을 조장하고 그런 생각이 합리적이고 매력적이고 심지어 올바른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그런 견해는 다른 누구보다도 여호와를 사랑할 때 자신과 가족이 행복해진다는 성경의 견해와 상반됩니다. (마태 22:36-39) 또한 아이들을 위한 동화나 이야기도 언뜻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부도덕한 행동을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교묘히 부추기기도 합니다.

19 물론, 건전한 오락을 즐기는 것은 잘못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자문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나는 교묘하게 숨어 있는 세상의 견해를 분별하는가? 나는 자녀가 특정한 TV 프로그램이나 책을 보지 않게 보호하고, 나 자신도 보지 않는가? 자녀가 세상적인 생각을 접해도 여호와의 생각으로 물리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는가?’ 우리가 하느님의 생각과 세상의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분별한다면 “이 세상 제도를 따라 틀 잡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누가 당신을 틀 잡고 있는가?

20. 우리가 하느님의 생각과 세상의 생각 중 어느 쪽에 의해 틀 잡힐지는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20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근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는 여호와이고 다른 하나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어느 쪽에 의해 틀 잡히고 있습니까? 그 대답은 우리가 둘 중 어느 쪽에서 정보를 얻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우리의 생각을 틀 잡아 우리가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들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을 계속 생각하는지에 유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1. 다음 기사에서 어떤 중요한 점을 살펴볼 것입니까?

21 앞서 살펴보았듯이, 여호와처럼 생각하기 위해서는 단지 우리의 정신을 나쁜 영향력에서 보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생각을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우리의 정신에 그분의 생각을 채워야 합니다. 다음 기사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더 살펴볼 것입니다.

^ 5항 사실, 아무리 자기 주관이 강한 사람이라도 다른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지 않을 수는 없다. 우리는 생명의 기원과 같이 매우 중요한 문제를 고려할 때든, 단순히 무슨 옷을 입을지 결정할 때든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의 영향을 받을지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