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 기사 41

우리 하느님은 “자비가 풍부”하십니다

우리 하느님은 “자비가 풍부”하십니다

“여호와는 모두에게 선하시고, 만드신 모든 것에 그분의 자비가 나타나 있습니다.”—시 145:9.

노래 68 간청의 기도

소개 *

1.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무엇이 떠오를 수 있습니까?

자비로운 사람이라고 하면 친절하고 따뜻하고 동정심이 많고 관대한 사람이 떠오를 것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에 관한 예수의 비유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 사마리아인은 다른 민족인 유대인이 강도들에게 맞아 쓰러진 것을 보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는 크게 다친 그 유대인을 “불쌍히 여겨” 사랑으로 돌봐 주었습니다. (누가 10:29-37) 이 비유는 자비라는 하느님의 아름다운 특성을 잘 보여 줍니다. 자비는 하느님의 사랑의 한 가지 부면이며, 그분은 매일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2. 자비의 또 다른 면은 무엇입니까?

2 자비에는 또 다른 면이 있습니다. 자비에는 합당한 근거가 있다면 처벌을 내리지 않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께서는 분명 우리를 자비롭게 대하십니다. 시편 필자가 말한 것처럼 “그분은 우리의 죄에 따라 우리를 대하지 않”으십니다. (시 103:10)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단호하게 징계하기도 하십니다.

3. 어떤 질문들을 살펴볼 것입니까?

3 이 기사에서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살펴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왜 자비를 나타내십니까? 단호하게 징계하는 것이 어떻게 자비와 관련이 있습니까? 우리가 자비를 나타내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말씀에서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자비를 나타내시는 이유

4. 여호와께서 자비를 나타내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나타내기를 좋아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영감을 받아 하느님께서 “자비가 풍부”하시다고 기록했습니다. 문맥을 보면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종들이 불완전한데도 그들에게 하늘 생명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에 대해 말했습니다. (에베소 2:4-7)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만 자비를 나타내시는 것이 아닙니다. 시편 필자 다윗은 이렇게 썼습니다. “여호와는 모두에게 선하시고, 만드신 모든 것에 그분의 자비가 나타나 있습니다.” (시 145:9) 여호와께서는 사람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타당한 근거가 있다고 여기실 때는 언제나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5.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자비를 어떻게 알게 되셨습니까?

5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얼마나 기꺼이 자비를 나타내시는지 누구보다 잘 아십니다. 그분은 하늘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으면서 수천 년간 인간 역사를 지켜보셨습니다. (잠언 8:30, 31) 그동안 아버지께서 죄를 짓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시는 것을 많이 보셨습니다. (시 78:37-42)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 아버지의 이 아름다운 특성을 자주 강조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않았고 다시 그를 집으로 맞아들였습니다 (6항 참조) *

6. 예수께서는 어떤 비유를 사용해 여호와의 자비를 보여 주셨습니까?

6 앞 기사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께서는 탕자의 비유를 통해 여호와께서 얼마나 기꺼이 자비를 나타내시는지 감동적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비유에서 아들은 집을 떠나 “방탕하게 살면서 자기 재산을 탕진했습니다.” (누가 15:13) 나중에 그는 자신의 부도덕한 행실에 대해 회개하고 자신을 낮추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었습니까? 아들은 금세 그 답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부둥켜안고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비롭게 그를 용서해 주고 다시 가족으로 맞아들였습니다. 아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회개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비유에 나오는 자비로운 아버지는 여호와를 상징합니다. 예수께서는 이 감동적인 비유를 통해 여호와께서 진실하게 회개하는 죄인들을 기꺼이 용서해 주시는 분임을 보여 주셨습니다.—누가 15:17-24.

7. 여호와의 자비는 그분의 지혜와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7 여호와께서는 비할 데 없이 지혜로우시기 때문에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여호와의 지혜는 냉정하거나 이성적이기만 한 특성이 아닙니다. 성경은 “위에서 오는 지혜”에는 “자비와 선한 열매가 가득하다”고 알려 줍니다. (야고보 3:17) 사랑 많은 부모처럼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보이면 자신의 자녀들이 유익을 얻는다는 것을 아십니다. (시 103:13; 이사야 49:15) 그들은 불완전하지만 하느님의 자비 덕분에 희망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무한한 지혜를 가진 여호와께서는 합당한 근거가 있으면 언제나 자비를 나타내십니다. 동시에 여호와의 자비는 완벽히 균형을 이루고 있습니다. 지혜로우신 그분은 자비와 방임을 혼동하시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8. 때때로 어떤 조처가 필요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8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이 고의로 죄의 행로에 들어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바울은 영감을 받아 그와 “더는 어울리지 말라”고 썼습니다. (고린도 전서 5:11)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회중에서 제명됩니다. 그런 조처는 충실한 형제 자매들을 보호하고 여호와의 거룩한 표준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제명 처분이 하느님의 자비의 표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제명 처분이 정말 자비의 표현입니까? 이제 그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제명 처분이 자비의 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9-10. 히브리서 12:5, 6에 따르면, 제명 처분이 자비의 마련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를 들어 보십시오.

9 그리스도인 집회 때 우리가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이제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는 광고를 들으면 매우 슬픕니다. 그 사람을 꼭 제명해야 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제명 처분이 정말 자비의 마련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필요한 징계를 하지 않는 것은 지혜로운 것도, 자비로운 것도, 사랑을 나타내는 것도 아닙니다. (잠언 13:24) 제명 처분은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행실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됩니까? 그렇습니다. 심각한 죄를 지은 많은 사람은 장로들이 단호한 조처를 취한 덕분에 정신을 차려서 행실을 바로잡고 여호와의 따뜻한 품으로 돌아갈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히브리서 12:5, 6 낭독.

병든 양은 무리와 떨어져 있어야 할지 모르지만 계속 목자의 돌봄을 받습니다 (9-11항 참조)

10 한 가지 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목자가 자신의 양들 중 한 마리가 병든 것을 발견합니다. 목자는 그 병을 치료하려면 병든 양을 무리에서 따로 떼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양은 무리와 함께 지내는 것을 좋아하며 따로 떨어져 있으면 불안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목자가 그 양을 따로 떼어 놓는 것이 가혹하고 무자비한 일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목자는 병든 양을 다른 양들과 함께 두면 병이 퍼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양을 따로 떼어 놓음으로 무리 전체를 보호합니다.—레위 13:3, 4 비교.

11. (ㄱ) 제명된 사람은 어떤 면에서 병든 양과 같습니까? (ㄴ) 제명된 사람을 위한 어떤 마련들이 있습니까?

11 제명된 그리스도인은 그처럼 병든 양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적으로 병든 상태입니다. (야고보 5:14) 일부 질병처럼 영적인 병도 쉽게 전염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는 영적으로 병든 사람을 회중과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징계는 충실한 양들에 대한 여호와의 사랑의 표현이며, 잘못을 저지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그가 회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제명된 사람도 집회에 참석해서 영적 양식을 섭취하고 다시 강한 믿음을 기를 수 있습니다. 또한 출판물을 받아서 읽고 연구할 수 있으며 JW 방송을 시청할 수 있습니다. 그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면 장로들은 때때로 개인적인 조언과 지침을 베풀어 그가 영적 건강을 되찾고 여호와의 증인으로 복귀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습니다. *

12.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에게 장로들이 사랑과 자비를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12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만 제명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장로들은 누군가를 제명하기로 결정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며 가볍게 처리할 일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적절한 정도로” 징계하신다는 것을 압니다. (예레미야 30:11) 장로들은 형제들을 사랑하며 그들에게 영적으로 해가 될 어떤 일도 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한동안 회중에서 제명하는 것이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는 행동입니다.

13. 고린도의 한 그리스도인은 왜 제명되어야 했습니까?

13 1세기에 사도 바울이 회개하지 않는 죄인과 관련된 문제를 어떻게 다루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고린도의 한 그리스도인은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데리고 사는 부도덕한 일을 저질렀습니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었습니다! 과거에 여호와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사람은 아버지가 수치를 당하게 한 것이다. 그 두 사람을 반드시 죽여야 한다.” (레위 20:11) 물론 바울은 그 사람에게 사형을 선고하라고 지시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고린도 회중에 그를 제명하라는 지침을 주었습니다. 그 남자의 부도덕한 행실은 고린도 회중의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주고 있었으며, 심지어 일부 사람들은 그의 충격적인 행동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습니다!—고린도 전서 5:1, 2, 13.

14. 바울은 고린도 회중에서 제명된 사람에게 어떻게 자비를 나타냈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고린도 후서 2:5-8, 11)

14 얼마 후에 바울은 죄를 지은 그 사람이 크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진실로 회개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회중에 불명예를 가져오기는 했지만, 바울은 그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장로들에게 “그를 기꺼이 용서하고 위로해 주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빠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바울은 회개한 그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꼈습니다. 또한 그 사람이 자신의 잘못 때문에 지나친 슬픔에 빠지고 크게 낙담한 나머지 용서를 구하는 일을 중단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고린도 후서 2:5-8, 11 낭독.

15. 장로들은 어떻게 단호하면서도 자비로운 태도를 나타냅니까?

15 장로들은 여호와를 본받아 자비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그들은 필요한 경우에는 단호한 조처를 취하지만 타당한 근거가 있어서 가능할 경우에는 자비를 나타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을 전혀 징계하지 않는 것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방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장로들만 자비를 나타내야 합니까?

자비를 나타내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됩니까?

16. 잠언 21:13에 따르면, 여호와께서는 자비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16 모든 그리스도인은 여호와의 자비를 본받으려고 노력합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 가지 이유는 여호와께서 자비를 나타내지 않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잠언 21:13 낭독) 우리 모두는 여호와께서 기도를 들어 주시기를 원하기 때문에 매정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겪는 동료 그리스도인을 모른 체해서는 안 되며 언제나 “낮은 자의 부르짖음”에 기꺼이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영감받은 말씀을 명심합니다.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은 자비 없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야고보 2:13) 우리가 얼마나 많이 자비를 받아야 하는지 겸손하게 인정한다면 자비를 더 나타내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특히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하여 회중으로 돌아올 때 자비를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17. 다윗왕은 어떻게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비를 나타냈습니까?

17 성경에 나오는 예들을 살펴보면 자비를 나타내고 가혹한 태도를 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다윗왕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여러 번 자비를 나타냈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왕에게 자비를 나타냈고 결코 보복하려 하거나 앙심을 품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24:9-12, 18, 19.

18-19. 다윗은 어떤 두 가지 상황에서 자비를 나타내지 않았습니까?

18 하지만 다윗이 항상 자비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매정한 나발이 거칠게 말하며 다윗과 그의 부하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자 다윗은 화가 나서 나발과 그의 집안 남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나발의 참을성 많은 아내인 아비가일이 신속하게 조처를 취한 덕분에 다윗은 유혈죄를 짓지 않았습니다.—사무엘상 25:9-22, 32-35.

다윗왕은 나단의 이야기를 듣고 자비심 없는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19-20항 참조) *

19 또 한번은 예언자 나단이 가난한 사람의 소중한 양을 빼앗은 부자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윗은 그 이야기를 듣고 화를 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런 짓을 한 자는 죽어 마땅합니다!” (사무엘하 12:1-6) 다윗은 모세 율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양을 훔친 사람은 4배로 배상해야 했습니다. (출애굽 22:1) 따라서 그 부자가 죽어 마땅하다는 다윗의 판단은 가혹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단은 그 가상의 이야기를 사용해서 다윗이 부자보다 훨씬 더 심각한 잘못들을 저질렀음을 깨닫게 도와준 것입니다! 다윗은 나단의 비유에 나오는 부자에게 자비를 나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그보다 훨씬 더 큰 자비를 나타내셨습니다!—사무엘하 12:7-13.

20. 다윗의 예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20 다윗은 화를 다스리지 못했을 때 나발과 그의 집안 남자들을 모두 죽이려고 했습니다. 또한 나중에 그는 나단의 비유에 나온 부자가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이 경우에, 평소에는 마음이 따뜻한 다윗이 왜 그처럼 가혹한 판단을 내렸는지 의아할지 모릅니다.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가혹하고 쉽게 판단하는 태도는 영적으로 건강하지 않다는 표시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강력히 경고하셨습니다. “더는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여러분도 판단받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판단하는 대로 여러분도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마태 7:1, 2) 따라서 가혹한 태도를 계속 경계하고 “자비가 풍부”하신 하느님을 본받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21-22. 우리는 어떤 실제적인 방법으로 자비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21 자비는 단지 감정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사실 자비는 “행동으로 나타나는 동정심”으로 정의됩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가족이나 형제 자매들이나 이웃들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지 주의 깊이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분명, 자비를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음식을 마련해 주거나 그 밖의 사려 깊은 행동으로 실제적인 지원을 베풀 수 있습니까? 복귀된 그리스도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위로하고 격려해 줄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나타낼 수 있는 매우 좋은 방법입니다.—욥 29:12, 13; 로마 10:14, 15; 야고보 1:27.

22 사람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잘 살펴보면 우리 주위에 자비를 나타낼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자비가 풍부”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비를 나타내는 것을 보고 분명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노래 13 감사의 기도

^ 5항 자비는 여호와의 가장 아름다운 특성 중 하나이며, 우리 모두는 그 특성을 길러야 합니다. 이 기사에서는 여호와께서 왜 자비를 나타내시는지, 그분의 징계가 자비롭다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우리가 이 아름다운 특성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는지 살펴볼 것입니다.

^ 11항 복귀된 사람이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과 장로들이 그를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려면, 이번 호에 실린 “여호와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기사를 참조하십시오.

^ 60항 삽화 설명: 옥상에 있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는 탕자를 보고 그를 안아 주려고 달려갑니다.

^ 64항 삽화 설명: 죄책감에 시달리던 다윗왕이 나단의 비유를 듣고 지나치게 화를 내며 그 부자가 죽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